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팬더 Oct 31. 2021

베르세르크, 반도체  그리고 웹툰

-  원칙과 유연함. 정답은 없겠지만

올해 5월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베르세르크>라는 일본 유명 만화의 작가로 유명한 미우라 켄타로 작가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직 50대 중반으로 한창 나이던 그는 그렇게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89년부터 <베르세르크>라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 스스로가 이 만화를 완결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고 할 정도였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만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인생을 쏟았습니다. (2018년 말 단행본 기준으로 40권이 출간되었으니 1년에 1.3권 정도가 나오는 수준입니다. 그만큼 한편 한편에 엄청난 정성을 쏟는 것입니다)


<베르세르크>는 완결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엄청난 흥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미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이룬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명성이 높아지고 부가 쌓일수록 그가 만화의 질을 위해 쏟는 열정과 정성은 더욱 높아져 갔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거대한 전쟁신 1화를 그리는데 1년 이상이 걸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수작업의 결과 / 출처 : 나무위키)

우리가 일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중 <장인정신>이 있습니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서 끝장을 보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제조업 중심의 시대에는 잘 맞아떨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을 글로벌 2위의 경제 강국으로 키운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정밀함과 끈기가 필요한 정밀기계와 기초과학 부분에서는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지나친 꼼꼼함이 오히려 독이 된 일본의 반도체 산업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일본을 글로벌 강국으로 키운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나 오히려 이러한 꼼꼼한 일본인들의 자세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독이 된 사례 또한 있습니다. 이에 대한 매우 재미가 있는 관점이 있어 소개를 해 볼까 합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1980년대까지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 강국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기업인 도시바, 히타치 등은 미국의 인텔, 모토로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반도체 선두 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50% 정도 수준이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2021년 현재 일본 반도체 산업의 현실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 반도체 시장의 몰락 원인에는 과잉 품질이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과거 일본은 고품질과 극한의 기술에 초점을 두고 반도체를 만든 반면, 한국과 대만의 기업들은 대량 생산을 위한 수율과 비용에 중점을 두고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반도체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본과 대한민국의 명운을 갈랐다 / 출처 : PIXABAY)


그리고 1980년대의 본격적인 PC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컴퓨터는 대기업과 정부, 연구소 등에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정교한 품질이 요구되었지요. 하지만 PC 시대의 도래로 컴퓨터가 가정과 소형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정교한 고품질의 일본 반도체는 한계에 닿게 되었습니다. 결국 더 빠르게 대량으로 도입할 수 있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한국/대만의 반도체가 각광을 받게 되었지요.


물론 여전히 반도체 장비와 소재 장비들에서 일본 업체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의 완성품 업체는 대한민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가 꽉 잡고 있습니다. 막대한 시장 지배력과 자금력을 통한 쩐의 전쟁에서 승리한 위들 승자들은 점점 자금 투자를 통해 기술을 향상하고 후발 주자들의 추적을 뿌리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준비와 계획, 이해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들은 완전히 이해한 뒤에는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전까지는 매우 느리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이던 카를로스 곤 회장이 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일본에서 경제사범으로 구속되고 영화 같은 해외 탈출극을 벌인 인물이니 어느 정도 일본에 대한 평가절하를 하는 상황임은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좋게 말하면 꼼꼼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늦은 일본의 특성을 잘 설명하는 표현 같습니다.



# 스마트폰이라는 바람을 잘 타고 있는 한국의 웹툰


위에서 예시를 든 '만화' 또한 비슷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의 만화 시장은 미국과 함께 글로벌 No.1 시장입니다. 파생되는 캐릭터, 게임, 상품 등의 규모도 어마어마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일본의 만화 시장이 앞에서 예를 든 반도체의 사례를 따라가리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웹툰 포맷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출판 서적을 베이스로 하는 일본 만화 대비 우리나라의 웹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콘텐츠입니다. 사실 저는 여전히 일본의 만화 스타일이 저에게 맞지만 (아무래도 수십 년간 익숙한 양식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이것을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면 꽤나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당연히 접근성은 출판 서적보다 스마트폰이 더 높습니다. 또한 출판의 경우 물리적으로 책을 만들고 인쇄를 하고 중간 상인을 (도매상, 서점 등) 거쳐서 일반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많은 과정이 소요됩니다. 당연히 중간 과정이 길수록 속도도 늦어지고 비용도 높아지지요. 하지만 웹툰은 플랫폼만 구축되어 있다면 거기에 작품을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업로드에 드는 수고와 서버 사용량의 증가는 앞에서 말한 출판에 비하면 굉장히 간소하고 저렴하겠지요.


아직 웹툰 규모는 일본의 만화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규모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만화'에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일본의 만화 시장과는 다른 또 다른 새로운 방향성으로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을 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인 NAVER와 카카오가 해외 진출도 시도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 원칙과 유연함, 얼핏 보면 모순되는...


물론 일본은 여전히 굉장히 많은 장점과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우리는 세계 최상위 수준의 경제 강국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분야에 있어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기존의 방식으로 너무나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리고 그 방식이 권장할 만한 미덕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더더욱 기존의 방식을 잘 버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투자자는 유연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계속 고민해 보지만 꽤나 모순적인 표현입니다. 머리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나의 투자 방식에 녹여낼 것인지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결국 제가 내릴 수 있는 답은 그저 꾸준히 공부하고 스스로의 방식에 대해 자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불완전할 수 밖에는 없겠지만 원칙과 유연성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외골수가 되거나 줏대 없이 흔들리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투자자로 살아남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日 (취우부종일)

紅 (화무십일홍)


이라고 하였지요?


길게 보고 꾸준히 가야 할 투자의 인생,

혹시 당신은 지금의 고난과 좌절에 자신의 원칙을 잃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현재의 안락과 성취가 변화를 거부하는 나태함을 가져오고 있지는 않나요?


각자 한 번쯤은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글을 이만 접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일본 또한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공급망의 훼손을 계기로 다시 반도체 산업의 자국 내 육성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워낙 우리나라와 대만 업체들의 벽이 강하지만, 일본 또한 반도체 산업의 기초가 튼튼한 만큼 기존 체제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 또한 지금의 위치에 만족한다면, 몇 년 뒤에는 어쩌면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제 글의 씁쓸한 소재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 슈퍼스타는 과연 거액의 가치가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