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사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안녕하세요. 너구리팬더입니다. 22년 1월 들어 주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본 시장이 인플레이션과 긴축의 우려로 얼어붙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딱히 할 것이 없다 보니,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증권사 리포트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명 '사물놀이' (사면 물리고 놀면 이긴다) 시기에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겠지요.
어쩌다 보니 제가 재테크에 조금의 경험과 지식이 있다는 과대한 평판이 있어서 온라인 강의도 하고 주변에서도 질문을 종종 받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꽤나 곤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턱대고 "이 회사 주식을 사면 수익이 날까요?" "이 부동산을 사면 어떨까요?"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소서!!"라는 질문을 받으면 도통 어떤 답을 줘야 할지가 막막합니다.
#1. 나쁜 방법이 아니다. 나쁜 상황인 것이다.
어쨌든 저는 그런 질문에 답을 잘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한 분이 운이 좋아서 친절한 분들에게 추천을 받는 경우에 성공하는 사례를 잘 보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테마주, 작전주, 잡주 등을 사기꾼 놈들에게 넘어가서 산 경우면 변명의 여지는 없겠지만, 주변에서 꾸준히 투자 수익을 거둔 지인, 증권사 전문가 등의 조언을 듣고 사더라도 실패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하고들 하지요. '내가 속았네. 분명히 말 안 해주는 비밀 무기가 있을 거야. 기관 놈들, 개미 뜯어먹으려고 대놓고 사기 치네... 등등' 그것이 심해지면 결국 비합리적인 음모론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은 버티다 못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이러한 사례를 살펴보면 결국 종목, 상품 등의 구체적인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방법을 실행하는 사람의 상황이 문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예시 1)
어느 회사가 꾸준히 배당을 7% 정도 주고 있습니다. 예적금 이자 수익을 생각하면 꽤나 구미가 당기는 주식입니다. 그래서 A 씨는 그 종목을 22년 1월에 풀 매수!!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주식은 12월 결산 법인으로 연 1회 배당을 하는 종목이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A 씨는 이 주식을 22년 12월 말 배당 기준일까지 들고 있어야 23년 3~4월 정도에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1월부터 가지고 있는 A 씨는 지루합니다. 다른 종목은 연초부터 오르기도 하는데 이 종목은 거북이걸음이고, 오히려 뒤로 가기도 합니다. (배당주를 위주로 투자해보신 분들에겐 익숙한 현상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22년 6월쯤 돈이 필요한 일이 생깁니다. 어쩔 수 없이 A 씨는 주식을 처분하였고, 찬바람이 부는 22년 10월쯤 다시 여유가 생겨 살려고 보았는데, 어라? 가격이 올라 있습니다. A 씨 입장에서는 조금 머리가 아파옵니다. 특히 6월쯤 어쩔 수 없이 판 것이 손실을 보았던 상황이라면요...
예시 2)
20년 1월 코로나의 공포가 시장에 점점 퍼지기 시작합니다. B 씨는 재무구조가 우수하고 성장성도 좋다는 어느 종목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종목이 -5% , -10% 씩 떨어지게 됩니다. 종목에 대한 믿음이 있는 B 씨는 '우량주는 하락 시 모아가는 거야' 라며 풀 매수를 합니다. 그리고 -20%가 되었을 때 정말 좋은 종목이 이런 바겐세일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레버리지를 쓰고, 마이너스 통장을 뚫고, 지인과 친척들에게 추천하여 매수를 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20년 3월, 시장이 크게 하락하면서 우량주인 B 씨의 종목도 크게 하락하게 되고, 결국 B 씨가 사용한 레버리지가 청산되면서 주식은 반대매매로 청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4월이 지나고 6월이 지나고 10월이 지나 그 주식은 위기를 극복하고 저 하늘로 날아가고 있는데 B 씨는 독한 소주 한잔에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습니다. (소주로 마음만 달래면 다행이지 잘못하면 원양어선을 타거나 밖에 나갈 때 배에 복대를 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A 씨는 고배당주를 잘 골라서 종목을 투자했습니다. B 씨는 우량주를 선택하고 하락 시 비중을 확대하는 투자를 하였습니다. 둘 다 괜찮다고 말해지는 투자방식입니다. 뭐가 문제였지요? A 씨는 시기를 잘 못 선택했지요. 꾸준히 배당을 받아가면서 투자할 상황이 아닌데 배당주를 선택한 것도 미스였지요. B 씨는 종목 선택에도 문제가 없었고 꾸준히 하락 시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에도 문제는 없었지만, 코로나19라는 예외적인 상황에 위험관리를 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2. 이런 일이 주식 시장에만 있는 일일까?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 비단 주식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몇 가지 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사회 초년생인 C는 보험설계사에게 보장도 되고 연금도 되고 심지어 (장기간 보유하면) 원금 보장도 되는 좋은 상품이라는 말을 듣고 보험 상품을 가입합니다. 그리고 C 씨는 사회 초년생은 월급의 50%를 투자하라,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좋은 재테크 격언에 따라 300만 원의 월급 중 매달 이 보험 상품에 150만 원씩을 넣어 버립니다.
3년 뒤 C 씨는 연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했던 재테크가 빛을 발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두근두근 이제 이 상품을 꺼내면 돈이 불려져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품을 해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네... 원금도 못 받습니다. 그나마 C 씨는 고민을 상담하러 만난 친구 D 씨와의 술자리에서 D 씨에게 술을 사주고 오고 맙니다. D 씨는 (사회 초년생은 빼고) 좋은 상품이라는 종신보험에 대부분의 월급을 넣고 있었던 것이지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당연히 '사회 초년생'이라는 자신의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상품을 선택한 것이 문제인 것이죠. 연금보험은 60세부터 받을 수 있던가요? 10년은 버텨야 중도 인출 시 사업비 때고 원금이나 받게 됩니다. 종신보험은 유족이 받는 보험이고요. 차라리 그 돈을 예금, 적금에 넣었다면 적어도 이자는 조금씩 받았겠지요.
당연히 보험 설계사가 잘못한 것 맞습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투자자 본인의 잘못도 있습니다. 내가 몇 살이고, 가족 상황이 어떻고, 직업과 수입이 어떻고 미래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이것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주고, 그렇지 못한 조언자라면 멀리 해야 하는데 당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일이 커져 버리는 것이죠.
2019년 사회를 뜨겁게 달군 독일 국채 DLS 사건도 같습니다. (물론 이 상품의 경우 상방_수익은 3~5%로 제한되어 있지만 하방_손실은 -100%도 가능한 구조라는 점에서 좋은 상품조차 아니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판매자들의 불완전 판매를 따져야 하지만, 이런 상품의 구조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품인지? 왜 은행 금리보다 몇 배의 수익을 주는데 (어지간하면) 원금이 보장된다는 말을 했는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상품이 아닌지 조금이라도 고민이 필요했던 사례였습니다.
#3. 지피지기 백전불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여기서 '지피' 즉 상대를 안다는 것은 좋은 종목과 좋은 상품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선택하는 것이 되겠지요. 이것은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당장 어떤 종목을 사야 돼?라는 질문도 이러한 '지피'의 초보 단계에 속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기'를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당장 온라인 재테크 카페에 올라오는 질문만 유심히 봐도, 뭔가 물어볼 때 자신의 상황과 목표, 투자 성향 등을 꼼꼼하게 적어 주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찾아볼까 말까입니다.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카페까지 가입할 열정이 있는 분들도 말이지요.
투자 시드가 3억 원인데 은퇴가 얼마 남지 않고 자식들 앞으로 계속 돈이 들어가는 50대 A 씨와 시드는 5천만 원이지만 입사한 지 3년 정도 되고 자식 없이 맞벌이하고 있는 30대 B 씨에 대한 투자 방식과 투자 종목은 절대로 같을 수는 없습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이 어디인지, 자녀는 몇 명이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자금은 얼마이고 수입은 얼마인지, 부모님 등 다른 가족, 친구 등은 어디에 거주하는지? 10년~20년 뒤의 인생 계획은 어떤지 등의 검토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거액이 들어가는 부동산은 수 틀린다고 손절을 할 수도 없으므로 더욱더 '지기'가 중요합니다.
#4. 역시 또 자기반성 및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 있다면
물론 저도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하는 것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당연히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주식 종목을 사고팔아서 눈물을 흘린 경험도 많고, 이 정도면 충분히 고려가 되었다 생각을 해도 지나고 보면 꽤나 미흡한 판단이었던 경험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 투자에서는 100%를 준비하면 절대 시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제 지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부분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저라는 사람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주변의 상황은 계속 늘어만 갈 뿐입니다. 제가 투자하고 가지고 있는 자산에 대하여 정말 문제가 없을 만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적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제가 말한 이상적인 모습을 실천하는 것은 어쩌면 꿈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드는 요즈음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재테크를 처음 시작할 때의 원칙은 최대한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행동의 결과를 제가 온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제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시작할 수도 없고,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모르는 것이 늘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장이 좋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꽤나 답답한 원칙이지만,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을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꽤나 도움이 되는 원칙입니다. 보유한 현금성 자산으로 즉시 상환이 가능한 수준의 무이자 대출 (무이자 대출까지 받지 않는다면 투자자로서 선을 넘은 것이겠지요) 외 불필요한 대출을 받지 않은 것과, 시장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처음 정한 현금 비중을 유지하는 등의 원칙이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속은 쓰리고 그 속을 이런 글로써 위한 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고, 밤에 잠은 잘 자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원칙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답은 자신의 안에 있다는 말'은 그저 듣기 좋고 있어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고전이 뻔한 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그만큼 그 '뻔한 말'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실천해 오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리고 성취를 이룬 사람이 적다는 것은 그 실천하기 어려운 '뻔한 길'에 답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거가 될 것이고요.
그럼 이번 글은 여기까지 적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