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굴러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한다.
아침에 조금 우울했다가도,
깨끗하게 세척한 재활용품들을
분리수거장에서 처리한 후,
담배를 한 대 피울 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금방 기분이 유쾌해진다.
유쾌한 기분은 잠시 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과속을 하면서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 감정이 고여 있던 자리에는
짜증이 밀려들어온다.
그 짜증은 헬스장에서
목표 중량 도전에 성공하면
자부심과 뿌듯함으로 바뀐다
목표 운동량을 완수하면
환희와 기쁨이 찾아온다.
그 환희와 기쁨은,
괴성을 지르며 엉망진창으로
운동하는 사람이나, 기구를
독점하고 앉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을 보면, 경멸의 감정으로 바뀐다
경멸은 지하철역으로 들어와
시원한 콜라 한 모금을 마시면
어느덧 사라지고 없다.
콜라가 주는 상쾌함만 남는다.
상쾌한 기분은 지하철 안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는 인간들이나,
시끄럽게 통화하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또 어느새 불쾌한 감정으로 바뀐다.
그 불쾌한 감정은 그 인간을 향한
몇 번의 째려봄을 끝으로
점점 희미해져서
한숨 자고 일어나 목적지에 내리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다.
바람이 불어온다.
딱 기분 좋은 정도의 바람이다.
바람을 맞으며 잠시
거리 한 귀퉁이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운다.
고층 빌딩과 그 주변을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차량들,
분주히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사는 건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잠시 가벼워진다.
하지만, 직장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그날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마음이 분주해진다.
퇴근 전까지는 일에 집중하느라
사색이며 생각 따위를 할 시간과 여유도 없다.
가끔씩 숙제를 해오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몇 번씩 설명해 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가,
그 화는 어느새 체념과 이해가
적절하게 섞인 관용이 되어버리고
그 관용에 인내가 더해져서
웃으며 같은 내용을 한 번 더 설명하고,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은
마저 다 하고 가도록 지도를 한다.
퇴근 후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날 때,
마음은 홀가분해진다.
퇴근 무렵,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을 때
하루의 일과에 지친 마음은
다시 고요해진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으면 울컥 슬픔이 올라오기도 하고
앎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며,
내가 경험한 것을
다시 확인하는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유튜브로 코믹 영상을 보며
정신없이 웃기도 하고
정부의 발표나 대통령, 국무총리 등 정치가들의
말을 들으면 답답함과 분노가 밀려오기도 한다.
감정은 구름과 같다.
정해진 형체가 없으며
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며
인간이 흐른다고 착각하는 그 시간 속에서
정처 없이 흘러갈 뿐이다.
구름이 사라진 곳에는 파란 하늘만 남듯,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그 자리에는
허공처럼 공허한 죽음만 남을 것이다.
감정은 구른다.
구름처럼 흘러간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리고 감정은
살아있음,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