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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통제, 영화

by 두두 Mar 20. 2025

어두운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마치 우주의 암흑물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은 휘황찬란한 별빛이나 도시가 만들어 내는 인공의 불빛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주 안에서 적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우주는 5퍼센트 정도의 빛과 95퍼센트의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어둠은 압도적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빛만 있는 우주는 너무 눈이 부셔서 오히려 아름답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별빛은 압도적인 어둠의 배경을 뚫고 먼 우주 저 편에서부터 이 지구까지 날아와 내 가슴속에 기쁨과 황홀함을 가득 채워 준다.


영화관의 어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암흑물질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과 무한한 고독과 고요를 내뿜는다. 영화관의 어둠을 뚫고 드디어 영화가 상영된다.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그다음은 한정된 시간 동안 허용된 빛의 향연이다.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심연의 슬픔과 우울을 달래주려는 듯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분명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한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여야 한다. 너무 현실 같아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영상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을 꾸며낸다. 아름답게, 무섭게, 우습게, 긴장감 넘치게, 슬프게, 사랑스럽게 현실을 꾸며낸다. 현실을 다양하게 변형한다. 다양한 공상과 상상을 이야기로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들을 사용한다. 영화는 삶 속에서 재료를 가지고 오지만,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을 잊기 위해서 영화를 찾기 때문이다.


현실은 보통 너무 가혹하다. 현실에서 우리는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침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말을 보지 못한다. 현실은 사실 시궁창에 더 가깝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남편의 실직, 아내의 외도, 시댁과의 불화, 처가와의 갈등, 성격 차이 등 다양한 현실적인 원인에 의해 이혼을 한다. 오로지 자녀에게 모든 것을 거는 삶을 살면서 자신들을 돌보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거의 언제나 선이 승리한다.

악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영화의 가족은 갈등을 겪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한다.

공포 영화의 주인공은 결국 악을 물리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공포 영화의 연약한 주인공은 러닝타임 동안 처절한 악전고투를 겪으며 결국 살아남는다. 주인공들이 비참하게 모두 죽는 영화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그런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불쾌감을 호소하는 영화평을 남기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그 이후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편집하여 결말에 배치한 듯한 인상을 준다. 슬픈 결말의 영화들은 인기가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슴속에 고인 고름 같은 눈물을 다 짜내기 위해 슬픈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를 찾기도 하지만, 그런 영화는 보통 흥행 성적이 저조하다.


사람들은 현실을 잊기 위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그리고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위안과 위로를 찾기 위해 영화를 찾는다. 영화는 일종의 진통제 같은 것이다. 현실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 고통과 힘겨움을 잠시 잊기 위해 무한한 고요와 정적의 공간인 암흑의 영화관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허구의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며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


현실은 결코 영화 같지 않다. 현실은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들의 반복이다.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딜 수가 없어 영화를 본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없던 감정이라도 만들어 보기 위해 영화를 본다.


현실은 지옥에 가깝다.

악인들은 건재하고 피해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자살한다.

위선자들이 힘을 가지고 갑질하는 인간들은 막강하다.

선은 무력하고 악은 강대하다.

가족은 해체되고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무례와 비인간화는 일상이 되었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약싹 빠른 교활한 인간들이 승승장구한다.


영화는 견딜 수 없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진통제 역할을 한다. 진통제는 일종의 마약이다.

국가의 승인을 받은 마약이다. 마약 중독자의 행복도 행복이라면 행복일 수 있다.


카프카가 말한, 얼어붙은 정신을

도끼로 산산조각 내는 듯한 영화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사람들은 마약에 가까운 영화를 원한다.

순간적인 쾌락이나 자극을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현실을 영화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 영화는 진통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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