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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수 Jan 03. 2023

두서없이 들어가는 말

록커의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 ①

내가 이 글의 연재를 시작한 이유와 핑계와 자가 자격 심의


  국내 음주 관련 통계에 ‘성별 및 연령 집단별 월간 폭음률’이라는 통계가 있다. 만 19세 이상 인구 중 최근 1년 동안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의 경우 7잔(또는 맥주 5캔) 이상, 여자의 경우 5잔(또는 맥주 3캔) 이상 음주한 사람들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2022년 현재 한국인의 월간 폭음률은 38.4%로, 첫 통계치로 추정되는 2005년의 36.2% 이래 꾸준히 3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30세에서 59세에 이르는 남성의 월간 폭음률은 얼추 보아도 50% 중반에서 60%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반면 여성은 20대 이후 꾸준히 감소하여 50대에는 15%대로 급감한다. 70대가 되면 남성은 25% 정도로 많이 줄긴 하지만 여성이 2%대로 준 것에 비하면 여전히 폭음 비율이 높아 남성이 여성에 비해 노년 건강 관리에 소홀함을 알 수 있다.


   작은책에 처음 싣는 글의 서두부터 이런 무시무시한(?) 통계로 시작한 것은 나 자신이 월간 폭음률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한국 남성 중 한 명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한 번쯤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한 벗으로부터 ‘술로 흥하고 술로 망할 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술을 벗 중의 벗으로 삼아 틈만 나면 술자리를 벌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노래를 했는데, 너무 이르게 시작한 탓인지 40대 초입에 이르러 ‘술로 망할’ 징조가 자주 나타나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중이다. 그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작은책 글 연재를 통해 내가 겪었던, 또는 역사 속에 나타나 있는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오로지 술만 마시는 중증의 알콜 의존증 환자들이나 아예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들에게는 술과 사람,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 관계 안에서 인간 삶의 흥망성쇠가 보이기도 하는 터라 이 글의 연재는 나의 삶을 무심히 반추하고,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고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식의 음주 습관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선 내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한다. 나는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한림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 출신으로, 친가가 한림리이고 외가가 애월읍 금성리였다. 모두 제주국제공항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면서 거리가 멀지 않아 어릴 적부터 친가와 외가를 종종 오갔다. 큰 손주여서 어른들이 많이 아껴주셨다는 공통점 외에 양가는 다른 점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양가 어른들의 주량 차이가 컸다는 점이다. 주량 차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친가 어른들은 술을 거의 드시지 않아 제사든 명절이든 자손들 상에 술이 올라오는 광경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던 반면 외가 어른들은 새벽까지 소주를 짝 단위로 비워 놓고 아침을 먹으며 다시 술상을 보는 두주불사형이었다. 친가 어른들이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게도 술을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도 못 했기 때문이다. 소주 한두 잔 만 마셔도 얼굴이 검붉어지는 아버지는 술을 강권하던 시절, 그때의 일터에서 회식이 있는 날이면 동료들에게 끌려오다시피 했다. 하물며 두주불사 처남들이 기다리는 처가에서는 오죽했겠는가.


  술에 관한 한 나는 외가의 피를 많이 물려받았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까까머리 시절부터 외삼촌들이 맛이나 보라며 조금씩 술을 주기는 했지만 제대로 판을 벌여 먹은 것은 중2 때 친구들과 곽지 해수욕장으로 야영을 가서였다. 사춘기가 와 제법 거뭇한 게 자라기 시작할 딱 그때야말로 어른 흉내 내는 게 가장 설레고 재미있을 때 아닌가. 용돈들을 있는 대로 모아 동네 할망이 운영하는 점빵에 가서 술을 양껏 샀다. 별빛이 모래처럼 박혀 가던 밤에 랜턴 빛 하나에 의지해 예닐곱 명이 모여 ‘대꾸리’라고 하던 1.8리터 정도 되는 소주와 오비 맥주병을 까고 대중없이 입으로 털어 넣었다. 어떤 놈은 입에 넣자마자 구역질을 해 대고, 어떤 놈은 얼굴이 상한 수박 모양으로 벌겋게 변하더니만 텐트 밖으로 뛰쳐나가 돌담 부여잡은 채 다 게워내고, 평소에 말이 없던 놈은 속에 있는 얘기를 막 쏟아내다가 엉엉 울다 쓰러지고, 돈 따먹는 거 좋아하던 놈은 그 와중에도 짤짤이를 하자며 떼를 쓰고 아무튼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술을 먹고 있었다. 결국 다들 쓰러져 잘 때 나는 남은 술을 탈탈 털어 넣은 뒤 바다 산책까지 하고 돌아와 잤다. 스스로를 (술의 신이라) 단단히 오해하게 만들고, 주위에도 나에 대한 편견(술로는 당할 자가 없는 존재)의 싹을 틔우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이후로 내 삶의 사소하고도 중요한 순간순간, 희노애락애오욕이 교차하는 모든 경험들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 얼추 한 세대 만큼의 시간이 흘렀으니 하려면 할 말이, 쓰려면 쓸 글이 얼마나 많겠는가만 일단은 여기서 줄이려 한다. 적어도 술과, 술자리의 사람들과, 취흥에 부르는 노래에 관해 글을 연재할 자격이 조금은 있다는 정도를 어필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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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작은책> 2023년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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