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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수 Jul 20. 2023

꼰대였고, 꼰대이고, 꼰대일 것이다

로커의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 ⑦

  로커가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를 하겠다고 해 놓고서 자꾸 옆길로 새는 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적잖이 걱정도 되지만, 기왕에 옆길로 샌 거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해 볼까 한다. 록이라는 장르와 록을 연주하는 인격 그 자체가 자유와 저항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나의 단언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복잡다단한 속성에서 비롯한다. 모든 인간이 한두 가지 속성만을 지니거나, 한 사람이 온 평생에 걸쳐 한두 가지의 속성만을 드러내며 산다는 것 모두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모든 로커가 오직 자유와 저항만을 외치거나 어떤 로커가 평생 자유와 저항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무대 위에서 자유와 저항의 화신마냥 불꽃같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이들이 무대 밖에서 억압과 순종의 주체가 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실제로도 그러하고 말이다. 단지 대체로 그러하다는 경향성이 있을 때 자유와 저항을 상징한다는 이미지가 씌워질 뿐이다. 

RATM의 공연 실황(사진: Bryan Bedder)


  어릴 적 고향집에는 4대가 모여 살았다. 할아버지로부터 남자는 부엌에 가는 게 아니란 말씀을 듣고 자랐고, 밥 먹을 때도 남자 밥상과 여자 밥상을 따로 차려 먹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사춘기가 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커졌을 때에도 나이나 위계에 따른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릴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 되레 동생들이나 후배들 중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에게는 고루하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즈음에 록을 접했지만 자유니 저항이니 하는 건 안중에 없었다. 거친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마초의 향기,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 화려한 연주력 등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게다가 밴드 내에서 폭군으로 군림했다던 딥퍼플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를 역할 모델로 삼았을 정도니 나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의식은 록 밴드를 하면서도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요새 유행하는 말, ‘젊은 꼰대’가 바로 나였다.


<대학내일> "새싹 꼰대 유형 6"(2018) 중 일부


  대학생 때 후배들이 들어오고 두어 달 지났을까, 밴드에서 장을 맡고 있는 동기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면담을 청해 왔다. 후배들이 합주하기로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않고 정리도 안 하는 등 제멋대로 굴고 있어서 걱정이란다.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언짢아진 나는 바로 밴드 합주실로 향했다. 힘주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배들이 모두 합주실 바닥을 바라보며 벽에 붙어 늘어서 있었다. 능구렁이 정치9단 같은 동기 놈이 제 손에는 피 묻히기 싫으니 미리 불러 모은 후배들 앞에서 성깔 있는 꼰대 동기 이름 들먹이며 잔뜩 겁을 주었던 거다. 동아리에 따라 선배가 후배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얼차려를 주는 분위기가 남아 있던 때이긴 했지만, 대학에서 그러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할 때라 동기 놈이 만들어 놓은 판이 영 마뜩잖았다. 하지만 분위기를 깰 수는 없어서 마음먹고 꽤 무섭게 몰아쳤다. 젊은 꼰대의 숙명과도 같은 역할극이랄까. 몇 년 뒤 군 복학 후 만난 후배들은 이때를 회상하며 정말 무서웠고, 내가 너무 싫었다고 했다. 



홍세화 작가. 로커는 아니지만 내가 직접 만나본 꼰대 중에서 가장 '자유와 저항을 중시하는 로커'에 가까웠다. (사진 출처: 한국일보)


  마초적이고, 완고하고, 권위적인 것이 강한 것이라는 일차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건 록이 갖고 있는 자유와 저항의 속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20대 중반 무렵이었다. 군 생활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권력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중성과 비열함, 음험하기 짝이 없는 욕망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언행과 권위적인 태도에 대한 반성을 낳았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각인되어 본능처럼 안에서 튀어 나오는 꼰대의 습성은 나의 이성을 능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가망 없는 꼰대’ 또는 ‘자유와 저항을 중시하는 로커’ 둘 중 어느 하나의 속성으로만 규정짓는 것도, 둘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변종의 속성으로 규정짓는 것도 맞지 않다. 꼰대의 습성이나 자유와 저항의 가치에 관심을 두는 사고방식 모두 후천적인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굳이 규정을 한다면 각각이 그 성질을 유지하면서 섞여 있는 혼합물, 이를테면 ‘자유와 저항에 뒤늦게 관심이 생긴 꼰대’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이 마음가짐만 추가하면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볼썽사나운 꼴을 시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꼰대 짓은 하지 않는다.’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타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인가. 제멋대로 살고, 타인도 제멋대로 살게 놔둘 일이다. 그렇게 처신하며 살아갈란다. 꼰대였고, 지금도 꼰대이고, 앞으로도 꼰대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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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작은책> 2023년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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