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수 Oct 13. 2023

상처

로커의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 ⑩

  3주 정도 된 듯하다. 아들 가람이가 편도선염에 심하게 걸려 재택근무를 하며 돌보아야 했다. 의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를 달랠 정도로 목에 염증이 심해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물론이고 기름에 열을 가한 음식도 먹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에 있는 채소들을 물에 데쳐서 최소한의 양념만 사용해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회에 나도 자극적인 맛에서 벗어나 재료 본연의 맛을 즐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얇게 썬 연근을 끓는 물에 넣던 찰나 물 한 방울이 내 오른쪽 배 위로 튀었다. 얇은 셔츠를 입고 있던 터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뜨거운 물을 먹은 셔츠가 살갗에 착 달라붙으며 뜨끈따끔한 충격을 가했다. 불과 2초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찬 물을 손에 묻혀 충격이 가해진 부위에 연신 뿌리고 발랐다. 약간 부어오른 것 같긴 했지만 나름대로 응급처치가 잘 된 듯 보였다. 


  그러나 뜨거운 물이 튀었던 부위는 엄지손가락 지문 만하게 다시 부어오르더니만 며칠 지나자 고름까지 흘렀다. 그제야 상태가 썩 좋지 않음을 감지하고 화상에 바르는 연고를 바르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연고를 발라도 쉽사리 낫질 않았다. 좀 나아가나 싶으면 아둔한 기억력 탓에 간지럽다고 훅 긁어버려서 채 굳지도 않은 딱지 이전의 허물 같은 조직이 벗겨져 진물이 나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3주가 다 지나가도록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물 한 방울이 튀어 생긴 상처 치고는 퍽 고약하다.


1977년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 장면(출처: 위키피디아)


  펑크 록(Punk Rock)이라는 장르가 있다. 반항적이고 자극적인 패션, 단순하고 파괴적인 음률과 퍼포먼스. 세기말 혜성 같이 나타난 ‘크라잉넛’이 대표적인 한국의 펑크 록 밴드다. 그리고 이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부터 자극적인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있다. 이들은 공영 방송에서 기타를 부수고, TV 진행자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Sid Vicious)의 기행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연주력이 형편없어서 무대 위에서 베이스를 치는 시늉만 하는 이 놀라운 베이시스트는 들리지 않는 연주 대신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면도칼로 생살을 그어 몸을 피범벅으로 만드는 꽤나 엽기적인 행위였다.   



  섹스 피스톨즈의 유일한 정규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는 펑크 록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1970년대 영국 사회에서 아나키즘을 기치로 내건 〈Anarchy in the U.K.〉나 여왕을 파시스트로 비유하는 〈God Save the Queen〉 같은 곡을 불러젖힌다는 건 어지간한 또라이 근성 아니고서야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근성의 끝을 보여준 이가 밴드 멤버들도 혀를 내두른 시드 비셔스다. 고여 있고 굳어 있는 모든 것들을 해체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의 대상에는 시드 비셔스 본인도 끼어 있었으니 말이다. 끊임없이 마약을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건 일종의 ‘자기 해체(파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아닐까. 무대 위에서 자기 몸을 날선 면도칼로 사정없이 그어 상처를 낸 것도 그 일환일 테고. 결국 그는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마약 과다 복용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삶으로 펑크 록을 구현해 낸 것이다. 


시드 비셔스(Sid Vicious)


  시드 비셔스가 산 세월의 곱절을 살았다. 시드 비셔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고하기 좋아하는 부류들로부터 사회생활 잘하려면 태도를 고치라는 식의 말을 제법 들을 정도로 반골 기질이 강했는데, 요즘 들어 그런 기질도 스멀스멀 잦아들고 있다. 위험한 현장에서 몸 사리지 않고 앞장서곤 했던 열혈청년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 작은 상처를 보며 근심스러워 하는 좀스런 중년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 몸에 칼을 그어가며 현실에 저항하던 시드 비셔스의 방식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상처투성이인 세상의 상흔을 자해라는 수단을 통해 좀 더 명징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방식에도 의의가 있지만, 상처를 더 크고 자극적인 상처로 고발하는 방식은 파괴와 죽음에 이르러야만 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은, 무대 위에서 시드 비셔스처럼 놀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에게 진심을 다해 욕설을 내뱉고, 미친놈마냥 멀쩡한 기타도 부셔 보고. 물론 살갗에 칼을 대는 짓은 하기 싫다. 상처 나면, 아프잖아.  


============================

이 글은 월간 <작은책> 2023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에릭 클랩튼과 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