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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수 Nov 14. 2023

변화

로커의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 ⑪

  《작은책》 8월호에 아버지의 병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글을 쓸 당시 이상 증세를 보인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워낙 갑작스러운 발병이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길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이후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아버지는 사경을 헤맬 정도로 증상이 나빠졌고, 나는 급변하는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하루하루 머리가 지끈거리는 피로에 시달렸다. 남들은 하나 걸리기도 힘든 희귀질환이 두 개나 몸을 잠식한데다가 치료법이 상충되는 증상들 때문에 대학병원 교수들마저 난감해하는 처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8개월 넘게 안 피웠던 담배를 다시 물었고, 거리를 두었던 술도 예전처럼 많이 마셨다. 


  아버지의 와병은 내게 크고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는 그간 크고 많은 짐들을 홀로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폐암 말기로 투병 중인 할머니 간병을 비롯해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버지 동생들에 대한 걱정, 낡을 대로 낡아 새로 짓는 수준으로 진행해야 하는 고향집 리모델링과 명절, 제사 등 집안 대소사들, 차마 글로도 쓰기 힘든 여러 골칫거리들이 스트레스를 키웠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아버지는 본인도 모르는 새 찾아온 희귀 질환에 무기력하게 잠식되어 버렸다. 그 결과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어 거동이 불가능해졌고, 두 팔도 제대로 들 수 없게 되었다. 의식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긴 했지만 컨디션이 좋을 때 이야기이고, 희귀 질환의 증상으로 보이는 이상한 언행을 종종 하곤 한다.


  아버지는 병들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수발만으로도 힘에 부치다. 동생은 제 앞가림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찾아뵐 때마다 애달프게 눈물을 흘리고, 고모들은 추석 명절 때 잡귀들이 집에 들어오지 못 하게 팥과 소금을 뿌리라고 한다. 아버지 상황이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몰라 챙겨야 할 것들을 알아보고, 난생 처음 보는 수준의 병원비에 산정특례다, 장기요양등급이다 하는 것들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이제껏 신경을 끄다시피 했던 집안의 경제적 상황에 관해 들여다보는 등 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제대로 조언을 구할 분들이 없다. 되레 나를 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묻는 통에 머리에 쥐가 나기를 반복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들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오랜 시간 이 집안에서 아버지가 맡았던 역할을 내가 맡는 수밖에.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간병으로 많이 지쳐 있는 어머니를 세심하게 살피고, 할머니와 작은 아버지, 막내고모를 자주 들여다보고, 일부만 공사가 진행된 고향집 리모델링도 마저 끝내고, 명절과 제사 문제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편하도록 바꾸어 놓고 말이다. 그밖에도 해야 것들은 많다. 


  추석연휴를 전후해서 제주에 내려가 있는 동안 고심이 많았다. 8월호 글을 쓸 때만 해도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으면 향후 20년은 서울에서 좋아하는 록 밴드 실컷 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 낙심해 하고 있을 여유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앞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기꺼운 척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 첫 시작이 20여 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 정착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2년 전 아내와 제주행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대도시를 벗어나 고즈넉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낭만적 욕구가 앞섰다고 한다면 지금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버겁더라도 기꺼이 감당해 보겠다는 책임감이 앞선다. 누가 대신 해 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 정말 그랬던 건지 좀 헛갈리기는 하지만 여태까지 내 삶에 찾아온 변화들은 어느 정도 스스로 써 가는 시나리오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변화의 지점들은 예측은커녕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조차 힘들어 허덕거리게 한다. 요즘 세상에 노인이라고 하기엔 젊은 축에 속하는 아버지가 희귀병을 두 개나 얻을 것이라고 어떻게 예측할 것이며, 그 때문에 내 향후 20년 삶의 계획이 송두리째 변할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가 있겠나. 그러나 예측 못 한 변화를 맞닥뜨린 이후의 변화는 예측 가능성을 따져가며 대응하는 것이어서 비교적 감당할 만할 것이다. 아버지의 발병과 병환의 급격한 악화가 예측 못 한 변화였다면 이후의 대응은 새로운 변화가 무너뜨려 놓은 시나리오의 울타리를 확장하여 예측 가능성의 범주에 두는 것이기도 하니까. 심신 챙겨가며 하나씩 해결해 나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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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작은책> 2023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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