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과 설렘이 가득했던 아인드라힘으로의 여정
아인드라힘 소풍 출발 전날,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3학년 학생들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세요"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한국인 교사로서 빈손으로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칼날에 야채가 맞닿는 소리와 떡이 끓는 달콤한 향기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엄마, 이렇게 해도 돼요?" 딸이 김밥 속을 정리하며 물었다.
"응, 그렇게 예쁘게 넣으면 돼."
딸을 동반하기로 한 건 영어와 불어가 능통한 고등학생 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딸에게 내 학생들과의 특별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밤늦게까지 김밥을 돌돌 말고, 매콤한 떡볶이 양념을 조절하며 정성을 다했다. 과일은 상하지 않게 조각내어 비닐팩에 담고, 음료수도 시원하게 준비했다. 여행 가방에는 한국적인 정취가 가득했다.
새벽녘, 알람소리보다 먼저 눈을 떴다. 시계는 6시를 가리켰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딸과 함께 택시에 올랐다. 택시 창문으로 비치는 튀니지의 이른 아침 햇살이 여행의 설렘을 더했다.
"선생님, 여기예요!"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 버스 앞에서 학생들이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새벽부터 모여 있었을 그들의 열정에 가슴이 뭉클했다.
화사한 봄 옷차림과 세련된 선글라스를 쓴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패션쇼의 모델 같았다. 특히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멋진 옷차림이 오늘만큼은 더 특별해 보였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그들의 진심 어린 환영에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버스에 오르니 학생들 사이에 비워둔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창가 쪽의 가장 전망 좋은 자리였다.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 경치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예요."
그들의 배려에 코끝이 찡했다. 딸과 함께 마련된 자리에 앉자 학생들의 설렘이 가득한 얼굴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버스 기사와 다른 튀니지 여행객들에게 "살롬"이라고 인사를 건넨 후, 최종 인원을 점검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튀니지의 풍경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아인드라힘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 우리의 기대감은 점점 고조되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 노랫소리, 그리고 김밥 냄새가 어우러진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버스에 오른 후에야 알게 됐다. 이번 여행은 우리 한국어반만의 소소한 나들이가 아닌,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규모 단체 행사였다. 네다섯 대의 버스가 길게 줄지어 출발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다른 학과 학생들과 현지 튀니지 관광객들까지 함께하는 거대한 패키지 여행이었다.
"선생님, 이런 행사는 매년 열려요. 특별한 날이죠!"
학생들의 설명을 들으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튀니지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도시의 분주함이 점차 한적한 교외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약 한 시간 가량 달렸을 때, 버스는 휴게소에 잠시 멈췄다.
휴게소는 이미 다른 버스의 학생들로 북적였다. 특히 여학생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야외에서 줄을 서며 기다리는 동안, 주변의 모든 학생들이 기대감에 차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버스에 오르자 여행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학생들이 준비한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K-pop 음악이 흘러나왔다. 'Dynamite'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학생들은 제자리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선생님도 함께 춤춰요!"
좁은 버스 통로에서 학생들은 K-pop 안무를 선보였다. 어설프지만 열정 가득한 그들의 춤사위에 버스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나와 딸도 어색하게 몸을 흔들며 동참했다.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창밖으로 풍경이 점점 더 푸르러졌다. 평지에서 구릉지대로, 다시 산악지대로 변해가는 지형을 보며 학생들의 설명을 들었다. 3시간 가량의 여정이 마치 30분처럼 짧게 느껴질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침내 버스가 멈췄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했다.
"아인드라힘에 도착했어요, 선생님!"
아인드라힘은 튀니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을 자랑했다. 해발 8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튀니지 북서부 젠두바 주의 산악 마을로, 알제리 국경과 가까운 아틀라스 산맥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붉은 기와지붕이 인상적인 집들이 산비탈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마치 유럽 알프스의 작은 마을을 연상케 했다. 바다와 사막으로 유명한 튀니지에서, 울창한 숲과 맑은 호수가 있는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1950년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휴양지로 개발됐어요," 한 학생이 설명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요. 튀니지에서 눈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죠."
맑은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도시의 매연과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의 평화로움이 온몸을 감쌌다. 고요한 베니므티르 호수의 푸른 물결이 햇빛에 반짝였고, 멀리서는 작은 폭포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자연스럽게 풍경에 매료되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학생들은 이미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여기저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하이킹, 산악 자전거, 조류 관찰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올리브나무로 만든 수공예품, 전통 도자기, 지역 특산 치즈도 유명하다는 학생들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 특별한 장소를 마음속에 새겼다.
파란 하늘, 푸른 숲, 맑은 호수. 튀니지의 숨겨진 보석 같은 이곳에서, 우리의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