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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끌로드 모네의 정원 방문기 3부

모네의 정원에서 만난 삶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by Selly 정

1.모네의 연못에서 발견한 인간의 따뜻함

모네의 초록색 집을 배경으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은 후 모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연못으로 향했다.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길다란 연못과 시냇물이 나타났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그 유명한 연못 그림의 실제 배경이었다.

수련이 심어진 연못가엔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연못 둘레 길이 비좁아 서로 몸을 부딪히며 걸어야 할 정도였는데, 그 누구도 짜증을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모두 "헬로", "봉주르"를 외치며 기분 좋게 자리를 비켜주고 기다려주었다.

작년에 미처 담지 못했던 곳들을 찾아 과감한 포즈를 취했다. 주변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활짝 미소 지으며 여유 있게 추억을 담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현재 순간의 감동을 즐기며 행복해하는 우리가 되어갔다.

구름다리에서 치렁치렁 걸린 버드나무와 벚꽃나무, 등나무 꽃들 사이에 얼굴을 조그맣게 내밀고 사진을 찍었다. 다리 중앙에 서서 귀부인이 된 듯 우아한 포즈도 취해봤다.

연못가엔 장미를 비롯해 작약, 튤립, 아이리스, 수선화, 진달래, 금련화, 제라늄, 라벤더, 달리아, 클레마티스, 팬지, 코스모스 등 다양한 꽃들이 연못 주변과 다리 근처에 풍성하게 피어나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더 머무르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고 다시 모네의 정원을 향해 나왔다. 정원의 모습을 눈에 꼭꼭 담아두며 기념품샵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지금이 오후 3시. 음식이 간절히 그리웠다. 기념품샵에서 지인에게 줄 선물을 하나 사고 식당을 향해 걸었다.

오후가 훨씬 넘은 시간이라 모든 가게가 문을 활짝 열고 부지런히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작년에 방문했던, 꽤 맛있었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도착하니 이미 만원이었지만 금세 자리 한 곳이 비었다.

빨간 철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았다. 다행히 햇빛도 쨍쨍 비춰 마음과 몸이 따뜻해지며 기분마저 훈훈해졌다. 피시앤칩스 한 접시와 커피, 시원한 음료수를 주문했다.

유럽 사람들처럼 햇빛을 즐기며 식당 넓은 마당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우아하게 천천히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했다. 집에서라면 손으로 얼른 먹어치웠을 감자칩을 포크에 꽂아가며 하나씩 먹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위해 조심스럽게 교양 있는 척 식사했다.

온갖 매너를 지켜가며 식사한 후 의자와 테이블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모네의 무덤을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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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라드공드 교회/ 끌로드 모네와 두 번째 부인 알리스 오슈데, 아들 미셀 모네/ 영국 공군 소속 조종사 6명의 묘지



2. 삶의 유한함과 현재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

모네의 무덤은 교회 근처에 있어 식당에서 한참을 가야 했다. 가는 길에 또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 앞에서 사진도 찍고, 박물관 주변 또 다른 정원을 배경으로 열심히 카메라를 누르며 교회 쪽으로 갔다.

작년에 모네 가족 묘를 본 기억이 있었지만 선명하지 않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양옆으로 그림 같은 집들과 크고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드디어 생트 라드공드 교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교회 옆 공동묘지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묘지에 이르니 제일 먼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영국 공군 소속 조종사 6명을 기념하는 무덤이 보였다. 젊은이들을 보니 마음이 짠하니 아팠다. 전쟁으로 젊은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각하니 몹시 슬픈 마음이 들었다. 짧게 묵념한 후 조금 위로 올라가니 모네의 가족묘가 나타났다.

이 묘지엔 끌로드 모네와 두 번째 부인 알리스 오슈데, 아들 미셀 모네 등 가까운 가족들이 함께 안장되어 있었다. 끌로드 모네, 그토록 유명했던,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오는 명소를 만든 모네가 이제 한 줌의 흙이 되어 대리석 안에 조용히 안장되어 있었다.

'인생무상 일장춘몽 남가일몽.'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순간, 나 또한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함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교회에 들어가 헌금하고 집을 향한 길을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시드르, 알코올 6도' 한 병을 방문 기념으로 샀다. 혹시나 빠뜨린 장소는 없나 하는 심정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샅샅이 두리번거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접고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왔다.

손님이 바로 가득 차자 버스는 다시 지베르니 역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10분에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빠른 시간 안에 역에 도착했다.

지베르니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걸 철도청도 알고 있나 보다. 기차가 좁은 시차를 두고 운행되고 있었다. 역에 도착하니 바로 기차가 들어왔다. 올 때도 예매한 시간표와 다른 기차를 탈 수 있었기에 갈 때도 아무 의심 없이 이른 시간대 기차를 탔다.

원래는 7시 기차였지만 6시 30분대 기차를 탔다. 비록 티켓에 적힌 좌석에 앉지 못해 이리저리 기차 안을 헤맸지만, 다행히 빈 좌석이 많아 편안하게 파리 생라자르 역에 다시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 모네의 정원을 추억해봤다. 기념품샵을 비롯해 다시 찾은 모네의 정원, 모네의 아름다운 집 안과 특히 리빙룸의 강렬한 노란색 식탁, 수련과 온갖 나무와 꽃들로 가득 메워진 연못가,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과 서로 길을 비켜주며 보여준 따뜻한 미소들, 정원 꽃들 속에서 모두가 주인공이 된 양 아름답고 우아하고 밝은 웃음을 짓던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어느새 내 입가에도 행복한 웃음이, 미소가 번져갔다. 아름답고 예쁜 모습과 장면을 보면 내면도 어느새 행복해지고 밝아지나 보다.

버스에서 내려 모네의 집을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 어느 누구에게서도 찡그린 표정을 보지 못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인데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낸 친구를 보듯 서로 웃고 살짝 미소 지으며 양보하고 인사하는 모습들을 보기만 해도 참으로 행복했다.

1주일이 훌쩍 넘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그때의 미소가 떠올라 행복함으로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아마 많은 분이 지베르니의 끌로드 모네 정원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나에겐 매년 방문하고픈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아직 이곳을 방문하지 못한 분들, 그리고 프랑스를 방문할 계획을 가진 분들이라면 5월 말이나 6월 초에 꼭 이곳을 방문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끌로드 모네의 화가 인생뿐 아니라 모네가 사랑하고 아낀 정원 속에서, 연못가에서 여러분 자신이 곧 여러분 인생의 참 주인공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인생을 축복하며,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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