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드디어 지베르니로 떠나는 날이 왔다.
가는 날 며칠 전부터 참으로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지베르니! 끌로드 모네의 정원이 살아 숨 쉬는 그곳. 꽃들이 만발하는 곳, 연꽃이 만발한 연못과 수북한 나무들, 그리고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곳. 녹색 창문과 갖가지 알록달록한 화려하다 못해 탄성을 자아내는 꽃들의 정원이 펼쳐진 곳.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딸에게 기차표를 빨리 예약하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어머나! 8시 이후 기차표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마하게 비싸다. 25유로, 30유로, 40유로까지 정말 비싸다. 왕복이면 벌써 50유로가 훌쩍 넘어간다. 거기에다 두 사람이면 기차표값만 해서 100유로가 훌쩍 넘는다.
입이 쩍 벌어졌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좀 더 저렴한 건 없어?"
다시 딸에게 재촉했다.
"새벽기차, 즉 첫차 7시 5분차는 엄마, 1인당 10유로야. 그리고 오후 7시쯤 돌아오는 기차도 10유로고."
"그래? 그럼 아침 일찍 서둘러서 가야겠네."
왕복 20유로, 그리고 두 사람이면 40유로. 이 정도면 괜찮다. 이렇게 새벽 첫 기차를 예매하게 되었다.
생나자르역까지 가려면 최소 집에서 6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조금이라도 기차값을 아끼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계속 나 자신에게 설득하듯이, 때론 달래듯이 말했다.
"아침 일찍 가자. 그러면 더 좋지, 시간도 널널하고 여유롭게 구경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여자들은 여행 가려고 하면 준비할 게 뭐가 그리도 많을까?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6시에 집에서 나설 채비를 했다. 딸도 부지런히 일어나서 화장하고, 옷장 앞에서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며 왔다갔다했다.
"날씨는 어때? 오늘 몇 도야?"
"19도. 날씨가 쌀쌀해."
"그러니 옷을 조금 두껍게 입고 가야해. 그런데 낮에는 조금 더울 수 있으니까, 두꺼운 옷, 조금 가벼운 옷을 잘 섞어서 입어야 해!"
참으로 애매쩡쩡한 요즘 날씨다. 아침과 저녁은 엄청 쌀쌀하고, 낮에는 또 완연한 봄처럼 따스하고 심지어 덥기까지 하다.
딸에게서 날씨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후 봄옷을 이중으로 두껍게 입었다. 더우면 겉옷 하나쯤 벗어도 될 거야! 하는 컨셉을 잡고, 조금 두꺼운 봄옷용 두 겹으로 몸을 감싸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제법 쌀쌀했다. 혹시 몰라 가져온 너울거리는 연파랑색 목도리까지 둘러야 할 정도였다.
6시쯤에 집에서 출발해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생나자르역에 도착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커피집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서 각자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는 나보다 앞선 사람, 내 머리 위에서 달리고 날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 일찍 서둔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역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두꺼운 헤드폰을 끼고 볼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렇게 새벽부터 여행을 가야 하나? 너무 이른 것 아냐?'
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런데 6시 55분에 도착했는데, 7시 5분 기차는 이미 떠났다고 딸이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해준다.
파리 기차 시스템은 원래 뜻밖의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익히 여러 번 체험한 바가 있지만,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발생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파리 기차 시스템에 어이가 없다.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7시 5분차가 이미 떠났으나, 아직 7시가 안 됐으니 7시 35분차를 타도 된다고 했으니 걱정 말라고 마지막 멘트를 날려준다.
"그래? 그러면 다행인데, 왜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생기는 거야? 참 이상하다니까?"
아무 잘못 없는 딸에게 짜증을 냈다.
7시 35분까지 30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스타벅스에 가서 아침에 마시지 못하고 왔던 커피를 한 잔 했다.
오히려 기차 시간이 늦어지니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겨서 더 좋아졌다.
그렇게 25분 정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다가 부랴부랴 기차를 타러 달려갔다.
표에 찍힌 좌석을 찾아 앉으려 하는데, 이상하게 좌석이 없었다. 그렇지만 많은 자리가 비었기에 적당한 위치에 있는 좌석에 앉았다. 표 검사도 하지 않았다.
'만약 표 검사하고 좌석 검사하면 이차저차 상황 이야기를 하면 되지!'
하는 근거 있는 여유를 부렸다.
사람들이 의자에 거의 앉자마자 기차는 바로 출발했다. 어제 저녁 거의 2시 가까이 잠을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났으니, 의자에 앉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눈꺼풀이 서서히 감겨왔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지베르니역에 도착했다. 1시간 15분이 금세 지나갔다.
"와, 지베르니역이다!"
드디어 끌로드 모네를 다시 만나러 가는구나! 왠지 기분이 좋았다. 모네의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예뻤다는 추억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붕붕 뜨면서 기분이 업up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