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다 Ep1
"선생님, 저 정말 한국 가고 싶어요!"
매년 3월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학생들의 간절한 목소리다.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뿌듯한 추억을 꼽으라면, 단연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했던 그 시간들이다. 특히 제 손을 거쳐 간 학생들이 1등, 2등을 차지해서 꿈에 그리던 한국행 비행기를 타거나 삼성 스마트폰을 품에 안았을 때의 그 순간들 말이다.
학생들에게 한국어 말하기 대회 1등상은 그야말로 '황금 티켓'이었다. 한국 1주일 무료 여행이라니! 비자 걱정도, 비행기표 걱정도 없이 말이다. 당시 튀니지 대학생들 한 달 용돈이 100-150디나르(약 4-6만원) 정도였는데, 한국 여행비는 최소 2000디나르는 들어야 했거든. 가족 전체 월급을 모아도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2등, 3등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당시 튀니지에서 최신 삼성 스마트폰은 800-1000디나르 정도 했는데, 이것도 학생들에겐 꿈의 아이템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이 쓰던 건 중국산 저가폰이었으니까.
"선생님, 제가 1등 못해도 되니까 2등만 해도 될까요? 스마트폰만 받아도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짠했다.
사실 학생들이 한국어에 빠진 건 순전히 K-POP과 한국 드라마 때문이었다. 2012년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휩쓸 때부터 한류 바람이 북아프리카까지 불어닥쳤고, 튀니지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얘들아, 가사 뜻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따라 부르니?"
처음엔 정말 신기했다. 유튜브로 BTS, 블랙핑크, 빅뱅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발음을 흉내 내고, 춤도 따라 추고. 한국어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오빠"라는 단어만 알면서도 한국 가수들 사진을 벽에 도배해놓고 살더라.
그런데 이게 점점 진짜 관심으로 발전하더라. 드라마 자막 없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아이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하고.
"선생님, 정국이가 브이라이브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려주세요!" "이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해'라고 했는데, 정말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기억나는 건, 한 여학생이 BTS에 완전히 빠져서 방에 포스터를 붙여놓고 'Spring Day'를 매일 들으며 한국어를 연습하던 모습이었다. 그 친구는 《태양의 후예》도 몇 번씩 다시 보면서 한국 문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나중에 정말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2등을 해서 삼성 갤럭시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시작된 한국어 공부가 어느새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바뀌었다.
튀니지 한국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1년에 딱 한 번. 전국 규모의 대회였다. 수도 튀니스는 물론이고, 스팩스, 가베스, 케루안 같은 지방 도시에서도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대회 당일이면 대사관 강당이 학생들과 가족들로 꽉 찼다. 부모님들도 따라와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특히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전날 밤 버스를 타고 와서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대회에 참석하곤 했다.
튀니지에는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많지 않았다. 시내에 큰 학원이 하나 있고, 몇몇 지역 문화센터에서 강의가 열리는 정도였다. 그래서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회를 보니 수준이 상당했다.
매년 신입생 모집 때면 최소 60명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학생들 대부분이 "말하기 대회 나가서 한국 가는 게 목표"라고 당당히 말하는 거였다.
"선생님, 저는 한국어 배우는 이유가 딱 하나예요. 말하기 대회에서 1등 해서 한국 가는 거요!"
이렇게 직진적으로 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어를 배우는 목적이 이렇게 단순해도 되나 싶어서.
처음 1년 동안은 몰랐다. 학생들이 이렇게 간절할 줄은. 그냥 K-POP 좋아하고, 드라마 보고 싶어서, 아니면 한국 회사 취업하려고 배우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수업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 친구들에게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정말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는 걸. 튀니지에서 한국까지 가려면 비자부터 시작해서 비행기표, 숙박비까지 최소 3000디나르는 들어야 했다. 웬만한 집 한 달 월세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학생이 있다. 파티마라는 여학생이었는데, 아버지가 택시 기사, 어머니가 청소 일을 하는 집안이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수업 후에 남아서 이런 얘기를 했다.
"선생님, 저희 집은 정말 가난해요. 아버지가 택시 운전해서 버는 돈으로 가족 다섯이 살아가거든요. 제가 대학 등록금도 겨우 낼 정도예요. 그런데 한국은 정말 가보고 싶어요. TV에서 보는 것처럼 진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그 순간 정말 가슴이 먹먹했다. 이 아이에게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단순한 경연이 아니라, 평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기회였던 거다.
학생들의 진짜 마음을 알고 나서부터는 나도 진짜 진심이 되었다.
"이 아이들 꿈을 꼭 이뤄줘야겠다."
그때부터 말하기 대회 준비에 제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다음 에피소드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