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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이야기:선발부터 훈련까지, 치열한 준비 과정2

by Selly 정

현실을 마주한 첫 번째 관문

"선생님, 제발 저 좀 뽑아주세요! 정말 한국 가고 싶어요!"

매년 봄이면 시작되는 이 간절한 부탁들입니다. 말하기 대회 참가 신청자는 보통 9-10명 정도였는데, 이 중 절반은 솔직히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한국어 기초도 부족한데 막연한 한국 여행 로망만 가득한 학생들 말입니다.

특히 기억나는 학생이 있습니다.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데 "선생님 믿고 따라갈게요!"라며 눈을 반짝이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전국 대회라는 것의 무게를 그 학생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올라오는 학생들 중에는 이미 한국어능력시험 4급, 5급을 딴 실력자들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대회는 정말 경쟁이 치열해요. 전국에서 모인 실력자들과 겨루는 자리거든요."

그래서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업 태도, 한국어 실력, 말하기 수준을 꼼꼼히 평가해서 최종 4-5명만 선발했습니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아쉬워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데려가서 좌절감만 안겨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정말 인상 깊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선생님, 저 BTS 노래 다 외워요!"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가사의 뜻도 아시나요?"라고 물어보니 "아니요, 그냥 소리만 따라 한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참 순수하면서도 귀여운 열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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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한 개인 지도

선발된 학생들과는 일주일에 두 번씩 별도 지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제 개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말입니다. 오가는 택시비만 20디나르, 시간으로는 왕복 2시간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학교에 나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학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니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대사관 공지 주제에 맞춰 A4 1-1.5페이지 분량의 원고 작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선생님이 써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요청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아니에요. 이 정도는 여러분이 스스로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앞으로 몇 달간 정말 힘든 준비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도 하기 어려워하시면 어떻게 견뎌내시겠어요?"

정중하지만 확고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원고 작성 과정에서 정말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많았습니다. 한 학생은 "나의 꿈"이라는 주제로 쓰면서 "저는 한국에 가서 김치를 많이 먹어보고 싶습니다"로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꿈이 김치 먹기인가요?"라고 웃으며 물어보니 "아니요,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요!"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순수하고 귀여운 마음이었지만, 대회용 원고로는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이 필요했습니다.



눈물과 함께한 집중 훈련

원고가 완성되면 본격적인 집중 훈련의 시작이었습니다. 문법, 어휘, 문장 구조를 하나하나 다 점검하고, 발음과 억양을 교정하고, 표정과 제스처까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세요.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시고, 시선은 앞을 향해서요!"

가장 어려운 부분은 표현 연습이었습니다. 말하기 대회에서는 비언어적 요소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랍 문화권 학생들은 손짓이 크고 표현이 풍부한 편인데, 한국어 발표에서는 이게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한번은 한 학생이 연습 중에 갑자기 "아이고, 답답해!"라고 한국어로 소리치더군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어디서 그런 표현을 배우셨어요?"라고 물어보니 "드라마에서요! 맨날 나오잖아요!"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정말 웃음이 터졌습니다.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어휘력은 때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감동적인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한 학생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발음 연습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연습을 하는데 억양이 갑자기 자연스러워진 거였습니다.

"어? 오늘 뭔가 다른데요? 어떻게 하셨어요?"

"선생님,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방탄 소년단의 파이어와 불타오르네'를 보면서 따라했어요!"

그 순간 정말 뿌듯했습니다. 이런 열정이 있으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 연습실

연습을 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는 상황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한 학생은 긴장하면 자꾸 아랍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Marhaba!"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지금 한국어 하시는 건가요, 아랍어 하시는 건가요?"

"죄송해요, 선생님! 긴장하면 자꾸 그래요..."

이런 실수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 안타까운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생각한 대로 안 되니까 학생들이 연습 중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에 그토록 가고 싶은데, 비자 문제도 있고 경제적 형편도 넉넉하지 않아서 평생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대회가 유일한 기회인 거였습니다.

"힘드시죠? 하지만 꿈을 이루려면 이 정도는 견뎌내셔야 해요. 포기하지 마세요."

격려하면서도 훈련 강도는 절대 낮추지 않았습니다. 학생들도 제 진심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연습에 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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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을 위한 마지막 점검

몇 달간의 훈련을 거치면 대략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우승 후보인지, 누구는 아쉽게 이번엔 어려울 것 같은지 말입니다. 하지만 절대 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데 미리 실망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대신 실전 연습에 더 집중했습니다. 긴장 완화를 위해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발표하게 하고, 제가 심사위원 역할을 해서 실제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여러분의 꿈을 생각하면서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가시면 됩니다."

매 연습 때마다 이 말을 반복했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 대비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자주 묻는 "한국과 튀니지의 문화적 차이점"에 대한 답변도 미리 준비했습니다.

정말 흥미로웠던 건 문화 비교 연습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 많은 분께 존댓말을 써요"라고 설명해주면 "아, 우리도 똑같아요!"라고 신기해하는 학생들. 그럴 때마다 "맞아요, 그래서 한국과 튀니지가 통하는 부분이 많은 거예요"라고 말해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면, 이제 정말 대회 당일만 남는 거였습니다. 과연 우리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준비는 계속되고 있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그 학생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준비했던 몇몇 학생들의 특별한 이야야기를 다음 호에서 더 자세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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