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덕분에 다시 만난 우리
7월 4일 금요일, 큰 아들의 상견례가 있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살던 우리 가족이 한국 땅에서 다시 모였다. 큰 아들과 예비며느리는 미국에서, 둘째 아들 역시 미국에서, 그리고 나와 딸은 파리에서 각각 다른 날짜에 고국 땅을 밟았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 이후 무려 7개월 만의 재회였다.
상견례를 무사히, 아니 행복하게, 그리고 즐겁게 마치고 나니 큰아들은 다시 여자친구의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떠났다. 남은 우리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영락공원을 향했다.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벌겋게 익힐 듯 따가웠지만, 둘째 아들이 렌트한 자동차 덕분에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영락공원을 찾을 수 있었다. 친가와 외가 할머니를 만나뵙고 기도를 드린 후 돌아오는 길, 엄마로서 참으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슴 깊숙이 차올랐다.
아이들이 뜨겁고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불평이나 잔소리 없이 엄마의 의견을 따라주며 묘지를 방문해서 두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준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외할머니가 어릴 때 그들을 돌봐주었던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기억 속에 잠길 수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조금 귀찮을 수도 있었겠지만, 손자 손녀를 돌봐주고 챙겨주었던 그 시간들로 인해 손주들이 할머니의 사랑과 섬김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할머니가 손주들과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장성한 나이에 손주들이 외가를,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찾아뵐 수 있었을까?
외할머니의 무덤을 찾아뵌 후 우리는 외할아버지댁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외할아버지와 손주들은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옛날,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이 집에 그나마 남아있었기에 할아버지와 손주들은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 아이들이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는다면, 손주들을 돌봐야 하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 생긴다면 기꺼이 도움을 줘야겠구나! 나와 손주들 간의 추억이 없다면 과연 그들이 나를 찾아올 것인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올 것인가? 아니다. 나부터도 애틋한 추억이 없는 외할머니나 친할머니의 무덤을, 그리고 추억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 않는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들이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아이들의 미래이지만 나는 아이들이 외할머니 묘지를 기꺼이 방문하는 모습을 보고, 외할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미래에 대한 다짐을 이렇게 해보고 있다.
큰아들이 여자 친구와 웨딩촬영 때문에 다시 부산에 내려가야 하는 일요일 저녁, 우리는 다 함께 부산을 여행하기로 계획했다. 10일간 렌트를 했기에 가능한 많은 곳을 여행하자고 다 같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나와 딸도 파리에서 살기에 사실 한국의 아름다운 많은 곳을 방문하지 못했다.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어디를 갈까?" 서로 의견을 공유했다. 부산에 간 다음, 그곳에서 제주도 갈까? 자동차도 가지고 가야 하니,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갈까? 언제 갈까? 몇 박 몇 일로 갈까? 서로 의견을 나누는 순간이 더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제주도보다는 먼저 부산을 가기로 했다. 큰아들이 어차피 부산에 가야 하니, 부산까지 바래다 줄 겸 먼저 부산에 가고, 부산에서 제주도를 가든지, 아니면 다른 곳을 찾아보자고 대충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바로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하루 전날 바로 숙소를 찾았는데도 꽤 괜찮은 에어비앤비 숙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본 그곳은 환상적인 뷰를 자랑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숙소, 바다 위에 넓고 긴 다리가 놓여있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숙소였다. 하루 전날인데도 이렇게 좋은 숙소가 비어있다니, 나에게는 마냥 놀라웠다.
우리는 서로 일심동체가 되어 그 숙소로 예약 결정을 바로 내렸고, 둘째 아들이 돈을 지불했다. 이번 여행에서 둘째 아들이 우리의 물주가 되기로 했다. 미국에서 나름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큰아들의 비밀스러운 정보가 있었기에, 나는 기꺼이 둘째아들에게 여행 경비를 가능하면 부담하도록 살짝 압력을 가했다.
"형아는 결혼준비로 돈이 많이 들 것이고, 여동생은 아직 대학원생이니, 니가 이번에 조금 돈을 써라, 알았지!"
둘째아들은 군말없이 "네, 엄마!"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 오후 3시쯤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부산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광주에서 부산까지 3시간 30분이 걸린다. 가는 길에 먹고 마실 간식과 음료수도 푸짐하게 준비했다.
3시간 30분간 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여정은 내 인생에서 또 다른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정말 눈물 나도록 행복했다. 큰아들은 결혼 웨딩 준비하러, 둘째 아들은 여행 가이드가 되어 주고, 물주가 되어 주고, 두 아들과 딸은 언제나 내 곁에서 든든한 가이드 같은 존재가 되어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겠는가!
다 큰 장성한 아들들과 딸이 엄마와 여행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는가! 차 안에서 다 함께 '이문세의 휘파람!'도 목청껏 부르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을 나는 보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무수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릴 때 이야기, 각자 미국에서의 생활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오다 보니,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가 있는 곳에 거의 다다랐을 때, 우리가 머물 곳이 바로 부산의 그 유명한 광안리 해수욕장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숙소가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라는 것을 몰랐던 우리는, 그저 숙소 뷰가 끝내주게 판타스틱하다는 것만 알았던 우리는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
먼저 짐을 풀기 위해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장관으로 인해 입을 쩍 벌렸다. 사진에서 본 바로 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다 속에 떠 있던 다리는 바로 광안대교였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49호 광장과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를 연결하는 바로 그 다리, 길이가 총 연장 7,420m로, 국내 최대 해상 복층 교량으로 불리는 광안대교가 내 눈앞에 떡 하니 놓여있었다.
밤에는 10만 가지 이상의 색상으로 화려한 조명을 연출하며, 부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광안리 해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구조물인 광안대교를 한 동안 멍하니 우리 모두는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웅장한 경관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찰칵 찰칵 사진 찍는데 열심이었다.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고, 풍경으로 찍고 자기 사진의 배경으로 찍고 요리조리 자신의 카메라에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광안대교의 모습을 담았다.
숙소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고 집안 구조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게 숙소를 맞이하고 아름다운 뷰를 선사한 숙소에 모두 즐거워하면서 우리는 고픈 배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맛집을 탐방하러 길을 나섰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이곳에서 뭐가 유명하지? 사람들의 추천 메뉴는 뭐지?"
우리는 검색을 부지런히 하면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광안대교가 품은 이 특별한 시간 속에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