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2 : 공항 트라우마
여러분은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 터미널 안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보딩패스를 손에 쥐고 출발 게이트를 향해 걸을 때, 가슴 한편에서 솟구치는 그 묘한 감정 말입니다.
지금까지 수십 번도 넘게 공항을 오가며 하늘길을 날았지만, 여전히 보딩패스를 건네는 그 순간, 보안검색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 서는 그 찰나에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곤 합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왜 이럴까요? 나만 유독 이런 걸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공항이라는 이 거대한 통과의례 앞에서 비슷한 마음의 떨림을 경험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보안검색대와 X-ray 검색대, 그리고 수하물 검사대를 지나면서 내 심장은 쿵쾅쿵쾅 북처럼 울렸습니다. '혹시나 이상한 물건이 나오지는 않을까?' '혹시나 비행기 탑승을 가로막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불안이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물론 이런 걱정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내가 그런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고 여행을 떠날 이유도 없을 뿐더러, 나 같은 평범한 여행자에게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막연한 불안감은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내 심장을 가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여권 심사대, 그 마지막 관문 말입니다. 이곳만 통과하면 바로 기내 면세점의 화려한 세계로 향할 수 있고, 그곳에서 한가로이 쇼핑을 즐기다가 비행기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보딩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Passport Control', 출입국 심사대. 이곳에 서면 왜 그렇게 여권 심사관의 표정을 뚫어져라 관찰하게 되는 걸까요? 예전에는 주로 남성 직원들이 업무를 담당했는데, 요즘은 여성 심사관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성 심사관들도 까다로웠지만, 여성 직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그에 못지않게 날카롭고 매서웠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꼼꼼하고 엄격한 잣대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매우 엄격해 보이는 여성 심사관의 줄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와 함께 줄을 서 있던 중국인 가족은 옆 줄에 틈이 보이자 재빠르게 그쪽으로 이동해갔습니다. 그들은 원래 내 뒤에 서 있었는데, 결국 나보다 먼저 출국 게이트를 통과해 나갔습니다. 나는 아직도 앞에 두 사람이나 더 기다리고 있는 줄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내가 선 줄의 여권 심사관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여권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피고,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여권 소지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좀처럼 쉽게 통과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짜증과 두려움이 반반씩 뒤섞인 채로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역시나 매의 눈으로 나를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내 여권과 내 얼굴을 번갈아 대조해보며 컴퓨터에서 내 정보를 차근차근 조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나를 슬쩍 쳐다본 후, 정말 천천히—그 사이 내 옆 줄에서는 벌써 두 사람이나 도장을 받고 유유히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내 여권에 딱 소리를 내며 도장을 찍고서야 "굿바이"라고 말했습니다.
속마음은 답답했지만, 나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감사한 마음을 담아 "땡큐, 메르시"라고 살짝 미소를 보이며 검색대를 빠져나왔습니다.
내 앞에 화려하고 우아한 럭셔리 브랜드들로 가득한 상점들이 펼쳐진 순간, 나는 비로소 깊은 평안함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이제 모든 게 끝났구나. 나는 이제 자유로워졌어!'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25kg가 수하물 제한 무게였지만 나는 19kg밖에 되지 않는 캐리어를 부쳤고, 보조 캐리어도 없이 그저 노트북이 든 백팩 하나만 메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번의 여행 경험으로 기내 반입 가능한 물품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서 미리미리 완벽하게 준비했기에 전혀 떨 이유가 없었는데도, 공항이라는 장소 자체가, '검사', '검색대'라는 표지판 자체가 나를 불안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마음속 깊이 돌아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감정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분명히 어딘가에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트라우마가 생긴 걸까요?
돌이켜보니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두 번의 뼈아픈 사건들 때문일 것입니다.
여행을 위해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준비 없이 '뭐 괜찮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공항 절차를 밟았을 때 벌어졌던 일들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꽉 찬 캐리어 지퍼를 열었을 때 온갖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던 그 창피했던 순간들.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내고 다시 다른 가방에 나눠 담아야 했던 그 민망한 기억들. 수하물 검색대에서 무게 초과로 4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던 그때의 억울함. 겨우 1-2kg 정도 넘었을 뿐인데 절대 봐주지 않고 초과 무게만큼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했던 그 쓰라린 경험.
'이제 됐다' 싶어서 기내 캐리어를 들고 당당하게 들어갔는데, 보안검색대에서 또 딱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물건을 버려야 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비싼 선크림과 화장품, 그리고 상당한 금액의 홍삼이었죠. 병에 든 홍삼을 수하물로 부쳤어야 했는데, 그때는 잘 몰라서 기내 가방에 넣고 갔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온갖 하소연을 했지만 그들은 절대 융통성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화장품과 홍삼을 그들에게 '기부'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출국해야 했습니다.
또 한 번은 노트북과 머리에 쓴 두건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경험은 독일 공항 출국 게이트에서 나시만 남기고 외투까지 벗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매번 노트북을 가지고 비행해야 하는 나는 백팩 가방에서 모든 전자기기를 꺼내서 보여줘야 했고—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머리에 쓴 두건도 벗어야 했습니다.
처음 두건을 벗어야 한다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산발한 머리 모양새를 잘 알고 있던 나는 도저히 두건을 벗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두건을 벗어야 한다는 것도 전혀 몰랐죠. 이때도 "벗지 않으면 안 돼요?"라고 사정했지만 이 또한 전혀 소용없었습니다. 두건을 벗었을 때 내 머리는 정말 산발이었고, 내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미국 비자를 세 번이나 거절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년 갱신해야 하는 비자 스트레스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미국에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인데, 여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내 비자 신청 기록들이 어디선가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비자 기한이 만료되어 새로운 비자를 받고 입국해야 하는데, 아직 발급이 완료되지 않아 임시 체류증만 가지고 입국해야 하는 상황에서 심사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야 했던 그 난처한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이러한 트라우마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이번 9월에 다시 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시 공항에 갈 생각만 해도, 여러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수하물 무게 제한과 부칠 수 있는 물품의 종류, 그리고 기내 반입 물품들에 대해 거의 90% 정도는 숙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심장 두근거림은 아마도 내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고, 심사받아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유독 시험 당일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누구보다 잘하는데, 시험 날이 되면 더욱 긴장하고 위축되어 실수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들. 바로 나처럼 말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시험 불안(Test Anxiety)' 또는 '평가 불안(Evaluation Anxiety)'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기억들이 나에게 '평가 불안'이라는 심리적 증상으로 나타난 것일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의 여러 번의 질책과 창피함을 겪었기에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 암시가 나에게 '혹시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증상들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훨씬 더 철저하게 준비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하물도 미리미리 체크하고, 가져갈 물건과 가져가면 안 되는 물건들도 꼼꼼히 확인하는 세심함을 훈련하고 있으니까요.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는 거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런 트라우마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면 힘든 요소가 되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준비성과 조심성, 그리고 계획성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마음먹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정적이고 잘못된 점들은 개선하고, 그 어두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려는 연습을 하기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니까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긍정심리학에서는 개인의 강점과 긍정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그는 행복과 웰빙을 위해서는 과거의 만족감, 현재의 행복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인지행동치료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론 벡(Aaron Beck)은 부정적인 자동사고를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로 바꾸는 것이 정신건강에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가짐과 관점의 변화는 실제로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통해 물리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반복적인 긍정적 사고와 경험은 뇌의 새로운 신경 연결을 만들어내고, 이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에서 나는 나만의 악기로 내 인생을 최대한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습니다. 부정의 기운도, 긍정의 기운도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고 끌어올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긍정'이라는 선율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자꾸만 나 자신을 긍정의 기운으로 훈련하고 연습하다 보면, 정말로 긍정의 에너지와 긍정적인 결과들이 내 인생에 더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을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하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각자만의 아름다운 교향곡이 되기를, 그리고 그 선율들이 모여 더 큰 화음을 이루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