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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매력이 가득한 Bercy Village

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우연처럼 찾아온 발견

그날의 햇살은 유난히 다정했다. 파리의 11월 하늘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맑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Bercy de Parc 벤치에 몸을 기댄 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어폰 사이로 스며드는 음악은 마치 공원의 나뭇잎들과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버스 64번을 타고 몇 번이고 지나쳤던 이 동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언제나 그저 '지나가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급히 찾아야 했던 화장실이 나를 이끌었고, 그 필요가 마치 숨겨진 보물 지도처럼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공원을 벗어나 버거킹과 스타벅스가 나란히 서 있는 거리를 지났다. 파리에서 화장실을 찾는 일은 때로 작은 모험이다. 익숙한 초록색 로고가 반갑게 손짓했고, 볼일을 마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때였다.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삽화가 현실로 뛰어나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돌길 위로 아담한 건물들이 마치 서로에게 기대듯 다정하게 늘어서 있었다. 건물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다른 듯, 각기 다른 색깔과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어머, 이곳은 어디지?"

발걸음은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호기심이라는 실에 이끌린 바늘처럼, 나는 그 골목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Bercy Village'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은 것처럼, 아니 애초에 존재조차 몰랐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보석 같은 동네가 숨어 있었다니. 기쁨과 놀라움이 뒤섞인 감정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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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cy Village의 역사와 매력

Bercy Village는 시간이 머물다 간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었다. 19세기, 이곳은 센 강을 따라 들어온 와인 배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시장 중 하나로, 수백 개의 와인 창고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지금도 골목을 걷다 보면 그 시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낡은 돌담에 새겨진 상호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나무 기둥들, 당시 와인 상인들이 밟았을 자갈길. 이 모든 것들이 과거에서 온 편지처럼 이곳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건물들은 마치 나이 든 귀족처럼 우아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덧칠한 색감은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옛것과 새것이 어색하지 않게 손을 맞잡고 있는 이곳은,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여기 스며든 햇살도, 이 돌 하나하나도, 백 년 전의 와인 향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쇼핑과 미식의 즐거움

Bercy Village는 작은 보석상자처럼 다채로운 상점들을 품고 있었다. 각 가게의 쇼윈도는 마치 작은 무대 같았다. 어떤 곳은 빈티지한 감성으로, 어떤 곳은 모던한 세련미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패션 부티크 앞을 지날 때,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파리지앵의 태도처럼 보였다. 뷰티 숍의 작은 향수병들은 유리창 너머로 각자의 향기를 자랑하듯 반짝였다. 홈 데코 가게에 들어서니, 촛대 하나, 쿠션 하나에도 프랑스인들의 삶에 대한 철학이 스며있는 것 같았다.

쇼핑을 하다 출출해지면, 레스토랑들이 다정하게 손짓했다. 프랑스 전통 비스트로에서는 오래 끓인 스튜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앞을 지나니 갓 구운 피자의 향이 공기를 물들였다. 아시아 퓨전 레스토랑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앉아 따스한 햇살을 접시 위에 담듯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날씨 좋은 날,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커피 한 모금, 대화 한 조각, 웃음 하나가 모두 삶의 진짜 맛처럼 느껴졌다.


문화와 예술을 담은 공간

Bercy Village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곳에 그치지 않았다. 이곳은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었다.

UGC Ciné Cité Bercy 영화관은 현대적인 외관 속에 영화라는 오래된 마법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스크린은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 방금 본 이야기의 여운이 Bercy Village의 골목길과 어우러져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냈다.

골목 곳곳에서는 작은 전시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곤 했다. 어떤 날은 거리 음악가의 첼로 선율이 돌담 사이를 감돌았고, 어떤 날은 작은 갤러리에서 신진 작가의 그림들이 조용히 관객을 기다렸다.

예술은 여기서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삶의 한 조각처럼 존재했다.


Bercy Village에서의 특별한 경험

Bercy Village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선물 같았다. 아무 계획 없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9세기의 건축물들 사이를 거닐며, 나는 시간의 층위들을 느낄 수 있었다.

돌길을 걷는 구두 소리는 과거의 메아리와 섞였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현재를 노래했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가끔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연인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걸었고, 가족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웃었다. 혼자 온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었다. 파리의 역사와 현재가 입맞춤하는 곳, 일상과 특별함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었다.

화장실을 찾다가 발견한 Bercy Village. 그날의 우연은 이제 나의 작은 일상이 되었다.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혹은 그저 걷고 싶을 때, 나는 이곳을 찾는다.

Bercy Village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특별한 말 없이도 편안함을 주는 그런 곳으로.

파리에 온다면, 아니 파리에 산다면, 꼭 한 번은 이곳에 들러보길 권한다. 계획에 없던 발견이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되니까. 그리고 그 기억은 마치 오래된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향을 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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