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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시간아, 잠깐만 멈춰줘

사직공원에서 만난 마지막 가족여행의 순간들

by Selly 정

� 떠나는 아이들, 커져가는 마음의 빈 공간

시계 바늘이 야속하게도 똑딱똑딱, 우리 곁을 서둘러 지나쳐 갔다. 아들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시간. 가슴 한켠에 텅 빈 공간이 서서히 커져가는 게 느껴졌다. 워낙 감정 표현이 서투른 나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온통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마지막 저녁, 우리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었으니까.

그렇게 향한 곳이 광주 사직공원이었다.


✨ 뜻밖의 선물, 빛의 세계와 만나다

"와아~!"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터져 나온 탄성. 뜻밖의 빛의 축제와 마주친 순간, 우리 가족의 표정은 동시에 환해졌다. 황홀함과 흥분,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몰려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미디어아트들이 산책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에 발을 디딘 듯, 혹은 '판의 미로' 속 환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평균 연령이 30대를 훌쩍 넘긴 어른들이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여기 봐! 별들이 움직여!" "아빠도 같이 사진 찍자!"

킬킬거리며 빛의 미로 속을 뛰어다니고, 양손을 활짝 벌려 빙글빙글 돌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던지.


� G타워에서 바라본 우리만의 별빛 축제

G타워 전망대에 올라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우와, 진짜 예쁘다..."

오색찬란한 불빛들이 저 멀리 광주 시내를 수놓고 있었다. 반짝반짝 윤슬처럼 흘러가는 자동차의 불빛들, 형형색색 네온사인들이 만들어내는 밤의 축제. 그 모든 게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걸어온 빛의 숲도, 우리 가족의 모습도 새삼 더 소중해 보였다.


� 펭귄마을에서 떠올린 엄마의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펭귄마을 골목골목을 천천히 거닐었다.

"엄마도 어릴 때 이런 동네에서 살았단다."

옛날 흑백 텔레비전, 빨간 공중전화, 낡은 놋그릇들... 추억의 물건들이 정겨운 골목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하나하나 구경하며,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그때는 정말 이런 전화기 썼어?" "응, 동전 넣고 돌려서 전화했지."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흘러갔다.

� 추억을 먹고 사는 어른들의 마음

사직공원의 빛의 숲과 전망타워, 그리고 펭귄마을을 돌며 우리는 내일이면 끝날 소중한 밤을 보냈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도 지금 이 순간이 몹시 그립고 아쉬웠을까?

큰아들은 곧 결혼할 여자친구가 그리울 것이고, 둘째와 딸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할 테지. 하지만 그 모든 감정들이 소중했다. 바로 이런 순간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니까.

"어른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지금의 모든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 가족여행이 주는 따뜻한 선물

여행이란 참 좋은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하니까. 여행은 가족의 유대감을 꽉 조여주는 따뜻한 끈이다.

우리에게는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평소에는 못했던 고민과 소망을 털어놓을 시간 말이다.


� 마음속에 남은 반짝이는 빛

다음 날, 둘째 아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큰아들은 웨딩 촬영을 위해 여자친구가 있는 도시로 향했다.

다시 나와 딸만 남게 되었지만, 한동안 나는 몹시 행복했다. 아이들과의 여행이 오랫동안 견뎌낼 충분한 행복 에너지를 주었으니까.

그 빛의 숲에서 우리가 함께 웃고 뛰고 춤췄던 순간들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반짝이는 야경이, 펭귄마을에서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가족여행의 진짜 의미는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함께 보낸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빛. 그 빛이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것.

오늘도 나는 그 빛을 마음에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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