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희의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멈춘 순간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다가 책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그 다음날 바로 구매한, 조은희 작가의 『여행의 이유』.
책장을 넘기던 중, 한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프랑스 여행자 3인방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들 삼인방의 특징은 모두 미식가라는 것이다. 가는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모두 다니는 직장을 포기하지 않고 장기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다음 문장에서 내 호흡이 잠시 멈췄다.
"프랑스에서 주는 법적 휴가는 5주인데 많은 회사들이 9-10주까지도 준다고 한다."
9주에서 10주라니.
"한국은 법적으로 2주 정도인데, 회사에서는 더 짧게 주는 경우도 많다. 1년에 2주 정도밖에 안 된다고? 몇 번이나 프랑스 3인방은 되물으며 놀라워했다."
책을 읽는 조은희 작가의 부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도 1년에 5-10주의 휴가를 받았다면 회사를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다녔을지 모르겠다는 그의 마음.
그런데 나는 왜 이 대목에서 숨이 막혔을까?\
부러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답답해서였다.
파리에서 살았던 3년의 기억 속에는 이 '9-10주 휴가'의 이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에 살 때였다. 작년 12월, 나는 거주증 비자를 신청했다. 4월에 받은 건 임시 체류 허가증. "정식 거주증은 언제 나와요?" "아마도... 12월쯤요."
8개월. 아니, 정확히는 1년이 걸리는 일이다. 왜 아는가? 작년에도 똑같았으니까.
이것이 바로 프랑스 행정 시스템이다.
유학생 정부 보조금 신청은 이미 1년째 진행 중이다. "서류를 다시 보내주세요."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여름이 오면? 딱 멈춘다. 아예 소식이 끊긴다. 휴가철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사람들도 안다. 자국의 행정이 느리다는 것을. "아, 프랑스 행정은 정말 느려요!"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9주 휴가를 떠난다.
카페에서 3시간씩 앉아 수다를 떨고, 점심시간에 와인을 마시며, "삶이 일보다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급한 일이 생기면? "담당자가 휴가 중이에요." "8월엔 아무도 없어요." "9월에 연락드릴게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에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숨통이 트인다는 것.
24시간 돌아가는 행정 서비스, 3일이면 나오는 각종 증명서, 당일 진료 예약, 즉시 처리되는 은행 업무.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자란 내게는 이 속도감이 마치 막힌 혈관이 뚫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파리에 있을 때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 여유롭게 즐기는 식사, 삶을 음미하는 태도.
이 글을 쓰면서 예상되는 반응들이 있다.
"그럼 한국 사람들은 일만 해야 한다는 거야?" "휴가가 길다고 뭐가 문제야?" "행정이 느린 건 또 다른 얘기잖아?"
맞다. 개인의 관점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10주든 2주든, 휴가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시스템을 갖춘 채로 자유를 누리는 것.
임시 체류 허가증이 늦게 나와서 중요한 학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날이 있다.
항의 이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 "당신의 잘못이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스템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이런 시스템이 싫으면 당신 나라로 돌아가세요."
그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한국에서, 창밖으로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빠른 걸음걸이가 익숙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운 파리의 느긋함을 떠올리게도 한다.
조은희 작가가 부러워했던 프랑스 3인방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9주의 휴가, 미식 여행,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삶.
분명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불편함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빠른 것에는 빠른 것의 장점이, 느린 것에는 느린 것의 매력이 있다.
중요한 건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
나는 한국에서 파리의 느긋함을 그리워하는 여행자이자, 동시에 한국의 빠른 속도에 다시 적응하고 있는 일상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이 나를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비슷한 딜레마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아니면 나의 관점이 편협하다고 생각하는가?
댓글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서로 다른 시각들이 모여야 더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테니까.
한국의 어느 오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덮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