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나는 세계 여행을 떠났다
파리에는 참 묘한 곳이 하나 있다.
14구 몽수리 공원 근처, 지하철 Cité Universitaire 역에서 내리면 만날 수 있는 이곳. 겉보기엔 그저 조용한 대학 캠퍼스 같지만,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Cité Universitaire International de Paris.
'국제 대학 도시'라고 번역하면 너무 딱딱하고, '학생 기숙사 촌'이라고 하면 너무 소박하다. 이곳은 그보다 훨씬 더 특별한 공간이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곳은 하나의 꿈을 품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며, 서로 다른 피부색과 언어, 그리고 문화를 나누는 것. 그렇게 세상을 조금 더 평화롭게 만들어가는 것.
캠퍼스를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들이 그 꿈이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랍어로 대화하는 학생들 옆에서 한국어가 들리고, 프랑스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흘러간다. 40여 개국의 기숙사가 저마다의 건축 양식으로 자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나라의 기숙사를 하나씩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마치 유럽 여행을 하듯 덴마크관에서 북유럽의 미니멀함을 느끼고, 일본관에서 동양의 정취를 만나며, 브라질관에서는 라틴의 열정을 엿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우리의 한국관도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한옥의 처마선이 파리의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괜히 가슴이 뿌듯해진다.
이곳의 매력은 학생들만이 독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말이면 파리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넓은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연인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속삭이며, 친구들은 와인 한 병을 나누어 마신다.
캠퍼스 곳곳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수영장에서 몸을 움직일 수도 있다. 학생 식당의 저렴한 식사는 지갑이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공간에 정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파리의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이곳 기숙사 한 자리를 놓고 전 세계 학생들이 경쟁한다. 한 달에 500유로 정도면 파리에서 살 수 있다니, 꿈같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석사 과정 이상만 신청할 수 있다는 조건도 까다롭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경험이 특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 이곳에서의 산책은 더욱 아름답다. 각국 기숙사의 지붕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속삭이고, 학교를 가로질러 런닝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세계 곳곳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140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함께 꿈꾸는 이곳. 파리에서 가장 국제적이면서도 가장 따뜻한 동네.
혹시 파리에 오신다면, 꼭 한 번 들러보시길. 지하철 RER B선 Cité Universitaire 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보시길. 당신도 잠시나마 이 아름다운 꿈의 일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파리의 한 모퉁이에서, 세계를 품은 작은 마을을 발견한 어느 오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