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느 드빌 여성 화가 이야기
오늘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파리의 3월은 언제나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날씨로 우리를 맞이한다. 우산을 챙기지 않고 나선 것을 후회하며 골목길을 서둘러 걷다가, 작은 병원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코린느 드빌 화가의 삶' 이라는 손글씨 간판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병원 안 작은 지하 홀. 5유로라는 소박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그 공간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하지만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코린느 드빌(1930-2021)이라는 화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지만, 그녀의 작품 앞에 서자 묘한 끌림을 느꼈다.
그녀는 샴페인으로 유명한 마을에서 태어나 91년의 긴 생을 살았다. 화가였던 부모와 다섯 형제 사이에서 자란 그녀에게 예술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명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그녀가 살던 샤를빌-메지에르를 점령했다. 동부 지역이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블로뉴 마을로 이주해야 했다. 전쟁의 폭격이 남긴 정신적 상처는 평생 그녀를 따라다녔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그녀 예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아르덴에서 두 자매와 함께 본격적인 창작에 몰두했던 시절. 그녀의 그림 속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환상적이고 놀랍도록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이들은 현실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모든 나의 집"이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다면적인 땅과 문화,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어우러진 이 그림은 그녀가 꿈꾸던 이상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실제로 자신의 집을 자신만의 취향에 맞게 꾸미고 가꾸며 살았다고 한다.
1948년 결혹을 계기로 잠시 붓을 내려놓고 와인 판매업을 하기도 했던 그녀. 그리고 놀랍게도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예술가의 삶이란 이렇게 다층적인 것인가 보다.
"동물 우화집의 탈바꿈"에서는 거대한 창조력을 지닌 동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때로는 변형되고, 때로는 여러 형태로 분화되는 이 동물들을 보며 아르튀르 랭보의 시구가 떠올랐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코린느 드빌은 랭보처럼 내부 세계의 단편들을 전달했지만, 거기에 외부 세계에 대한 연대기를 덧붙였다고 한다.
3월 26일까지 열리는 이 작은 전시회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미술관도 좋지만, 이렇게 골목 어디선가 마주치는 작은 전시공간에서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야말로 파리 생활의 특권이 아닐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전시회를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코린느 드빌의 알록달록한 세계가 회색빛 파리 하늘을 조금은 밝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파리에서, 어느 흐린 날 3월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