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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봄날, 로댕의 정원에서 영혼의 울림

다시 오고 싶은 곳, 다시 만나고 싶은 감동

by Selly 정

"오늘은 가야겠어."

아침에 창문을 열자 반갑게 쏟아지는 파리의 햇살이 내 마음을 간질였다. 3월의 쌀쌀한 바람에 미뤄두었던 그 약속, 바로 로댕 미술관으로의 여행이었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망설였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혼자 정원을 돌아다니며 조각상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달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하늘이 맑고 투명하게 웃고 있었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내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가자, 로댕이 기다리고 있어."


설렘을 품고 떠나는 여정

지하철역 글라시에르에서 6번선을 탔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파리의 일상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몽파르나스에서 13번선으로 갈아타는 순간,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렌느 역에 도착하자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역에서 단 2분. 짧지만 설레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 여기서 로댕도 매일 이런 길을 걸었겠구나.' 대한민국 대사관 건물이 눈에 들어올 때쯤, 그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미술관 간판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매표소 직원분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다.

"어디서 오셨어요? 중국? 일본?"

"한국에서 왔어요."

그러자 그분의 얼굴이 더욱 밝아지더니, 서툰 발음으로 정성스럽게 말씀하셨다.

"왼쪽으로... 가세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이 작은 한국어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정성인지.

"감사합니다!"

내 대답에 그분도 활짝 웃으셨다. 문득 깨달았다. 코로나와 추위로 관광객이 줄어든 요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이 따뜻한 환대 속에서 이미 여행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18세기 저택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마법

20230318_154843.jpg?type=w773 로댕 미술관 박물관 정면 건물

로댕 미술관은 원래 18세기 초에 지어진 '바이론 호텔'이라는 저택이었다. 1908년, 로댕의 비서였던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를 이곳으로 초대했고, 로댕은 이 아름다운 공간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1911년, 마침내 이 저택을 인수한 로댕. 1916년 프랑스 정부와 함께 미술관을 설립하고, 1919년부터 그의 모든 작품이 이곳에서 숨쉬기 시작했다.

건물 정면을 바라보며 상상해봤다. 로댕이 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설렘을, 이 복도를 거닐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을 그 순간들을.


"잠에서 깨어난 여성" 앞에 서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할 수 있을까?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미소 지을 것만 같은 그 표정에서, 로댕의 마법 같은 손길이 느껴졌다.

"지옥의 문"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1880년부터 1917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37년간 혼신을 다해 작업한 대작. 그 안에서 탄생한 "키스"와 "생각하는 사람"이 독립된 작품으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로댕과 캐리에르" 작품에서는 진정한 우정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친구 화가 외젠 캐리에르와의 깊은 우정을 대리석에 새겨 넣은 로댕. 돌 속에서도 따스함이 전해져 왔다.


정원에서 만난 생동감 넘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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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미술관 정원 전체 모습과 청동 조각상들

정원으로 나서자 눈이 번쩍 뜨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온 아이들이 조각상 앞에서 킬킬거리며 웃고,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작품에 대해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삼삼오오 모인 젊은이들이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 이거야! 이게 바로 살아있는 미술관이구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로댕의 주요 작품들이 정원 곳곳에서 봄햇살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들과 어우러진 조각상들은 마치 자연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존재들 같았다.


그런데 파리 날씨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화창했다가 갑자기 비가 후두둑, 다시 맑아졌다가 바람이 휘익휘익, 또다시 햇살이 쨍쨍... 마치 로댕의 작품처럼 다채롭고 역동적인 하루였다.

하지만 날씨가 어떻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로댕 작품들이 주는 깊은 감동과 놀라움이었다. 각각의 조각상 앞에 설 때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울려 퍼졌다.


다시 오고 싶은 곳, 다시 만나고 싶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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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및 미술관 내부의 모습


발걸음을 미술관 밖으로 돌리며 다짐했다.

'5월에 다시 와야겠어. 그때는 정원에 장미꽃이 활짝 피고, 갖가지 예쁜 꽃들이 만개해서 정말 환상적인 모습일 테니까.'

봄꽃들과 어우러진 로댕의 조각상들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까?

로댕 미술관에서의 하루가 내게 남긴 것

단순히 유명한 조각상들을 구경한 게 아니었다. 돌과 청동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100여 년 전 한 예술가의 뜨거운 열정을, 그리고 예술이 주는 위로와 감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무엇보다 깨달은 건, 진정한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로댕이 작품 속에 담아낸 인간의 희로애락이 오늘 내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꽃을 피웠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일상에 지친 마음에 작은 위로와 큰 영감을 선물받는 것 말이다.

로댕의 정원에서 만난 봄날의 감동을 가슴에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 설렘과 감동은 오래오래 내 마음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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