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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잃어버린 글, 다시 찾은 마음

봄이 건네는 두 번째 선물

by Selly 정

사라진 글 한 편 때문에 마음이 허전했다. 3월 초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몽수리 공원을 거닐며 적어둔 글이 카테고리 정리를 하다 실수로 삭제되어 버린 것이다. 그 글 속에는 막 깨어나기 시작한 새싹들의 떨림과 겨우내 움츠렸던 내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는 순간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래서 오늘, 따스한 햇살이 파리의 지붕들을 반짝반짝 비추는 이 화창한 오후에 다시 몽수리 공원을 찾았다. 잃어버린 글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20230325_142250.jpg?type=w773 [화창한 날씨의 공원 입구 전경]


파리 14구, 38헥타르의 푸른 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벌써부터 가슴이 탁 트인다. 1869년 나폴레옹 3세가 선물한 이 공원은 장 샤를 알판드의 손길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린 낭만주의 정원의 백미가 되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후루룩 달려온 봄바람이 볼을 간질이고, 언덕을 올라 파리 전경을 내려다보니 에펠탑이 반짝반짝 인사를 건넨다. 공원 한가운데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에서는 오리들이 퐁당퐁당 물장구치며 놀고, 우아한 백조들이 스르르 물 위를 미끄러진다. 1897년 지어진 밴드 스탠드에서는 에디트 피아프와 장고 라인하르트가 공연했다던 그 무대가 여전히 여름 일요일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고, 폴리페무스 조각상은 포도주 주전자를 들고 외로이 하늘을 바라보며 세월의 이야기를 품고 서 있다.


20230325_143720.jpg?type=w773 [오리가 있는 호수 풍경]


조깅 코스를 따라 뛰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통통통 리듬을 만들고, 놀이터에서는 "엄마, 봐봐!" "더 높이!" 하는 맑은 목소리들이 방울방울 터져 나온다. 넓은 잔디밭 곳곳에서는 가족들이 도시락을 펼쳐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연인들이 나지막이 속삭이며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참나무들이 바스락바스락 속삭이고, 삼나무들이 솰솰 노래하며, 단풍나무는 새파란 잎사귀로 팔랑팔랑 춤을 춘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작은 우주 같은 곳이다.


이어폰을 끼고 공원을 한 바퀴 빙 돌며 걸었다. 좋아하는 음악이 귓가에 흐르고, 발 아래로는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이 전해진다. 복잡하고 어수선했던 마음이 차근차근 정리되는 기분이다. 몽수리 공원은 루브르나 에펠탑처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찾는 필수 코스는 아니지만, 바로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파리지앵들에게 일상 속 낭만과 평화를 선사하는 진짜 보물 같은 공간이니까. 공원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21번 버스를 기다리며 뒤돌아보니 석양이 공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20230325_144633.jpg?type=w773 [ 21번 버스 정류장]


3월에 썼던 글은 사라졌지만, 오늘 새로 만난 몽수리 공원은 그때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마음도, 시선도 계속 변해간다. 그래서 같은 장소라도 매번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당신도 오늘 가까운 공원을 산책해보면 어떨까? 거창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단지 우리가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된다. 매일 가도 절대 질리지 않는 몽수리 공원처럼, 평범한 일상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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