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간의 한국 휴가후에 만난 새로운 도전들
두 달간의 한국 휴가를 마치고, 드디어 파리로 돌아가는 길. 에티하드 항공 좌석에 몸을 맡기며 문득 옛 친구를 만나는 듯한 반가움이 밀려왔다. 7년 전 자주 이용했던 중동 항공사들 - 에티하드, 카타르, 에미레이트. 파리 유학생활이 시작된 후로는 거의 타지 않았던 항공사였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어색함 없이 편안했다.
그런데 깜짝 놀라운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아부다비 공항에서의 경유!
"어? 여기 2년 전에 와봤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솔솔 되살아났다. 물론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해두긴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지워진 줄 알았던 그곳. 마치 예상치 못한 고향 마을을 지나치게 된 기분이랄까.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맞다! 2년 전 그 끔찍했던(?) 11시간 경유 시간! 2층 스낵 코너에서 의자들을 이어붙여 임시 침대를 만들고, 오돌오돌 떨며 설잠을 잤던 그 밤 말이다. 가방이 도난당할까 봐 깊은 잠도 못 자고, 한 시간마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피던 그 긴긴밤.
"내가 저기서 정말 고생했었지..."
크고 넓고 깨끗한 공항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그 경험 때문에 다시는 너무 긴 경유 시간이 있는 항공편은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안녕, 아부다비 공항아. 오랜만이야. 비록 힘들었던 추억이 있지만, 그래도 넌 정말 멋진 곳이야. 다음에 또 만나자!"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 도착 첫날,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되던 대규모 시위가 있다던 바로 그날이었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파리 12구까지는 평소 50유로면 충분한 거리. 그런데 키 크고 덩치 큰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파리 시내로 바로 갈 수는 없어요. 시위 때문에 길이 막혔거든요. 돌아서 가면 되는데, 그럼 요금이 더 나올 거예요."
25kg짜리 캐리어와 8kg 백팩을 끌고 다닐 처지에 무슨 선택권이 있겠나. "네, 그렇게 해주세요."
가는 길에 아저씨가 친절하게 실황 중계를 해주었다.
"저기 보세요! 바리케이드 쳐놓은 거 보이죠? 아, 저기 경찰들 많이 보이시죠? 차량 통제하고 있어요."
프랑스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 택시 요금 65유로를 내고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오후 6시에 출발해서 다음 날 오전 10시에 도착. 시간을 7시간이나 번 셈이었다.
그런데... 어? 뭔가 이상하다.
파리 12구는 너무나 고요했다. 평온 그 자체였다. 거리는 조용하고, 시민들은 평소처럼 여유롭게 산책하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서 시위를 한다는 거지?"
메트로 6번 라인을 타고 샹젤리제까지 가봤다. 오히려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가을을 맞이해 다시 몰려든 관광객들로 거리가 북적거렸다. 만약 정말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면 경찰들이 중무장하고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간간이 순찰하는 경찰관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
"언론에서 난리법석을 떨더니, 정작 현실은 이렇게 평온하네?"
다시 한번 미디어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드디어 음악학교 피아노과 3학년 등록을 하는 날! 유럽은 9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된다. 어제부터 수업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몸이 피곤해서 첫 수업은 패스했다.
그동안은 항상 딸과 함께 등록하러 갔었다. 듣기가 여전히 어려워서 딸의 도움이 절실했거든. 말하기는 그럭저럭 외운 문장으로라도 할 수 있는데, 듣기는 정말... 한국 드라마 자막 없이 보는 것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딸이 아직 한국에 있어서 혼자 가야 했다.
"걱정 반, 괜찮을 거야 반!"
두근두근 뛰는 마음으로 음악학교 문을 열었다. 다행히 행정 비서가 다른 사람과 대화 중이었다.
'시간 여유가 생겼네!'
속으로 안도하며 머릿속으로 불어 문장들을 반복 연습했다. "Je viens pour m'inscrire... Je suis en troisième année de piano..." 중얼중얼.
드디어 내 차례! 간단히 인사하고 준비해온 문장을 천천히 말했다. 비서가 내 서툰 프랑스어를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아주 간단한 말로 대답해줬다.
"2학기 재수강은 안 돼요. 시험에서 '매우 좋음'을 받으셨거든요."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비서가 빠르게 설명하는 걸 다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오케이, 알겠어요. 3학기로 등록할게요"라고 얼른 답했다.
수표를 쓸 때도 순조로웠다. 주소 변경도 문제없이 처리했고. 그런데!
"Cent quarante euros... Quatre cent soixante-dix euros..."
아니, 140유로, 470유로... 이렇게 간단한 숫자를 왜 못 알아듣는 거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계속 못 알아듣자 비서가 종이에 숫자를 적어줬다. 첫 번째 수표도 예시로 적어주며 "똑같이 따라 쓰세요"라고.
수표 4장에 싸인까지 마치고, 등록 완료!
"끝났어요!"
비서가 건네준 서류들 - 등록증 2장과 2학기 시험 통과 증명서 1장을 소중히 받아 들고 음악학교를 나섰다.
혼자 등록하러 간 첫 경험이었는데, 생각보다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물론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어 창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40% 이상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파리에 산 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듣기는 어려워. 하지만 종이에 적어주며 설명해주니까 다 이해되네!"
비록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서 해냈다는 게 정말 뿌듯했다. 매일 DELF B2 준비하며 불어 공부한 보람이 있었나 보다.
딸 없이 혼자 온 오늘, 나는 한 발자국 더 자신감 있는 나로 성장했다. 거주증 재신청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등록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오히려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처럼, 딸의 도움 없이도 도전하는 담대함으로 한 마디라도 더 불어를 내뱉어보는 기회를 얻었다.
기분 좋게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오랜만에 보는 관광객들의 활기찬 모습에 마음도 덩달아 흥겨워졌다.
50대 중반에 시작한 늦깎이 유학생활. 이렇게 하나씩 도전하며 배우고 자라는 중이다. 동시에 나 홀로 외국에서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
오늘 밤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작은 승리를 이뤄낸 하루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