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로 가는 길, 한국어 교사의 새 학기 일기
오늘은 베르사유(Versailles)에서 한국어 수업이 있는 날이에요. 2016년에 한국어 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금까지 강사로 활동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이 길을 오가고 있어요. 9월 첫 학기 개강일이라 혹시 모를 지하철이나 RER 파업을 대비해 평소보다 3시간이나 앞서 집을 나섰어요.
파리 12구(12e arrondissement)에서 메트로 6번선을 타고 덜컹덜컹 앵발리드(Invalides)역으로 향해요. 그곳에서 베르사유 샤토 리브 드 고쉬(Versailles Château Rive Gauche)역까지 가는 RER C로 환승해요. 30분에서 40분간의 작은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에요.
RER C는 정말 흥미로운 교통수단이에요. 기차라기엔 거리가 짧고, 지하철이라기엔 범위가 넓은 그 애매한 경계 위를 달리는 독특한 열차지요. 개인적으로는 기차와 지하철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 열차가 칙칙폭폭 달리며 파리 곳곳의 매력적인 풍경을 펼쳐 보여줘요.
RER C 창문 너머로 스치는 파리 시내 모습들은 제게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해요. 변화무쌍한 경관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쁨을 선사해요. 칙칙폭폭 달리는 리듬에 맞춰 오디오북을 틀면, 한쪽 귀로는 책 속 이야기가, 두 눈으로는 창밖 풍경이 흘러가요. 가끔 오디오와 전자책을 동시에 즐기며 경치를 바라보는 그 순간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시간이에요.
베르사유 샤토 리브 드 고쉬역에서 내려 계단을 톡톡 내려가면 오른편에 버스 정류장이 다정하게 기다려줘요. 그곳에서 6202번 버스를 타고 약 20분 더 달리면 마침내 제가 근무하는 베르사유 협회에 도착해요! 파리에서 이곳까지 보통 1시간 20분, 때로는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어요. 그래서 늘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 여유를 두고 출발해요. 메트로, RER C,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는 이 여정이 전혀 따분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저만의 소중한 재충전 시간이랍니다.
"어머나, 정말 일찍 오셨네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어요. 수업 시작 2시간 전이었거든요. 2개월간 그리워했던 학교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저를 맞이해줘요. 그 익숙한 풍경이 무척 반갑고 정겨워요.
베르사유에 도착하면 항상 향긋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수업 준비를 시작해요. 간혹 협회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오늘은 이곳저곳 둘러보다 고요한 교실에서 홀로 독서에 빠져 있는 선생님 한 분을 발견했어요.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며 알게 된 건, 이번 학기에 새롭게 부임하신 분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젊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어 교육 분야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실력자이기도 하셨고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국어 교육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학생들과의 만남 시간이 다가왔어요. 프랑스는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니까, 오늘이 바로 신선한 얼굴들과 첫 인사하는 날이에요.
"2B반에는 어떤 분들이 오실까? 어떤 매력적인 사람들과 만나게 될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해요.
마침내 한 분씩 교실로 들어오시기 시작하네요. 드르륵, 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신선한 얼굴들과 마주하니 마음이 벅차오르고 기뻐요. 모두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분들이에요. 제 얼굴에는 어느새 환한 미소가 만개했어요. 계속해서 입가에 웃음이 번져요.
지금까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수업을 진행해왔어요.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학생이 한두 명씩 있었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터를 활용해 칠판에 PPT를 투영하며 강의했어요. 하지만 오늘부터는 칠판에 직접 글씨를 쓰며 설명하는 순수 오프라인 수업으로 전환됐어요.
오랜만에 손에 쥔 보드 마커가 어색해요. 화이트보드에 예쁜 글씨를 쓰려고 하니 생각처럼 잘 안 되네요. "어라, 왜 이렇게 삐뚤빼뚤하지?" 몇 년 만에 보드 마커로 글씨를 써보니 서툴러졌어요. 역시 무엇이든 오랫동안 쉬면 처음엔 어색하기 마련이에요.
드디어 학생들과의 본격적인 한국어 수업이 막을 올렸어요. 첫 시간이라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직장인, 대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어린 중학생까지! 나이도 직업도 천차만별이지만, 딱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어요. 바로 한국어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지요.
프랑스인들 앞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무척 짜릿하고 벅찬 순간이에요. 2020년 파리에 처음 와서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동과 벅참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한때 홀대받았던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은 알아도 한국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우리가 이제는 프랑스의 중학생부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의사, 변호사까지 온갖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이런 경험들이 점차 일상이 되어가더라고요.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의 기쁨과 보람은 그대로예요.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가네요. 학생들과 즐겁게 수업하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할 시점이 됐어요. 잠시 쉬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벌써 종료 시간이 다가왔네요.
학생들과의 아쉬운 이별...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날 예정인데도, 왜 이렇게 서운할까요? 정말 시간이 화살처럼 빨라요. 역시 한국어 교사에게 학생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이 시간은 진정한 에너지원이에요. 그동안 잠들어 있던 모든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에요.
이렇게 행복하고 보람찬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과 함께 파리로 돌아가는 RER에 몸을 맡겼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러 가는 베르사유 여행길, 기차에서 듣는 오디오북, 창밖으로 스치는 가을 햇살에 물든 파리 풍경들이 파리 유학생활의 또 다른 낭만적인 추억으로 새겨져요.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동시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런 삶은 제게 마치 수채화 같은 인생이에요. 수채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저에게는 더욱 의미 깊어요. 파스텔 톤의 은은한 아름다움처럼 마음 깊숙이 따스한 울림을 전해주는 감정, 세월이 흘러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들을 안겨주는 그런 감정 말이에요.
저는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이 그저 기쁘고 행복했는데, 저를 처음 만난 학생들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정말 궁금해요. 그분들도 저를 반갑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앞으로 함께할 우리의 수업 시간들이 분명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따뜻해져요.
베르사유로 향하는 이 길, 오늘도 제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추억의 앨범에 고이 간직되어요.
50대 중반, 파리에서 꿈을 이루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