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 피아노 수업, 그리고 샹젤리제의 황금빛 저녁
딩동~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새 학기 첫 피아노 수업이 있는 날! 가슴이 두근두근,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렌다. 내 피아노 선생님은 러시아에서 오신 60대 중반의 아름다운 분이다. 은발이 우아하게 빛나는 모습이 정말 품격 있으시다. 무엇보다 내가 더듬더듬 불어로 말해도 "아, 우이~ 알겠어요!" 하며 따뜻하게 맞장구쳐주신다. 이 선생님과 나, 참 캐미가 잘 맞는다. 수업 시간이 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배워도 집에 돌아가면 어김없이 '어? 뭐였지?' 하며 멍해진다. 50대라는 나이는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때로는 서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이신 적이 없다. 내가 "선생님, 또 까먹었어요..." 하며 쭈뼛쭈뼛할 때마다, "괜찮아요~ 천천히 다시 해봐요" 하며 처음처럼 다정하게 설명해주신다.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처음 받은 교재는 빨간 표지에 커다란 곰돌이가 그려진 초보용이었다. 초보용이라고? 내게는 하버드 교재나 다름없었다!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려워요. 더 쉬운 걸로 바꿔주세요!" 하며 떼를 썼지만, 선생님은 단호하셨다. "아니에요.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그 교재.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그 '어려운' 교재에 익숙해졌다. 선생님은 약속대로 나를 한 걸음, 한 걸음 이끌어주셨다. 그렇게 1학년을 졸업하고, 2학년을 수료하고, 이제 3년째 피아노와 함께하고 있다. 50대에 파리에서 음악학교 유학생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매주 월요일, 45분간의 수업. 이론과 실습을 오가며 보내는 이 시간은 정말 금세 지나간다. 선생님은 가끔 시계를 슬쩍 보시지만, 나에게는 시계 바늘이 마법에라도 걸린 듯 빨리 돈다. 집에 돌아와 펼치는 교재 앞에서 "어? 이게 뭐였지?" 하며 멍해질 때가 부지기수. 선생님께서 "절대 교재에 음계를 적지 마세요!"라고 하셔서 머리로만 외워야 하는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럴 때면 딸의 도움을 받는다. "엄마, 이거 '도'야!" 하며 하나씩 불러주면 나는 열심히 노트에 끼적끼적. 그리고 그 노트를 옆에 두고 삐걱삐걱 피아노를 친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이 나이에 뭘 하고 있나? 이렇게 배워서 언제 <엘리제를 위하여>라도 칠 수 있을까?' 절망의 늪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울한 마음은 오래 가져가지 않는다. 훌훌~ 털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을 가득 채운다. 지금 이 순간, 이 기회, 이 축복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그리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톡톡톡, 오른손으로. 똑똑똑, 왼손으로.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눌러가며 연습한다. 오늘은 새로운 곡을 배웠다. "선생님, 한 번 연주해 주세요!" 부탁하니 기꺼이 들어주신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촬영했다. 집에서 들으며 연습하려고. 선생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들으며, 언젠가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을까 꿈꿔본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샹젤리제 거리는 오늘도 화려하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볼을 스치지만, 내 마음만은 따뜻하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관광객들, 반짝반짝 빛나는 브랜드숍들의 조명, 카페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 모든 게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 버스킹하는 청년의 기타 소리가 따라라라~ 울려 퍼지고, 카페 테라스의 사람들이 와글와글 담소를 나눈다. 이 모든 풍경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긴 시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상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 작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순간들을 찾아내는 것, 그게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잠깐 숨을 고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긍정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찡그려진 얼굴에도 조금씩, 조금씩 미소가 피어날 것이다. 오늘도 파리의 하늘 아래, 50대 유학생의 하루가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파리에서, 피아노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