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5%의 덫 1부

3 장 -3 화. 혼자 남은 밤

by Selly 정

남편의 등이 차가워 보였다. 김정수는 경자에게서 등을 돌린 채 이불을 끌어당기고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으로 바뀌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든 것 같았다. 코를 골지는 않았지만, 경자는 알 수 있었다. 남편이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경자는 혼자 남았다.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경자는 완전히 혼자였다. 남편의 등과 자신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불과 몇십 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그 거리가 마치 수십 미터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계속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숫자들이 떠올랐다. 매매가 2억1천만원, 전세금 1억9천만원, 갭 2천만원, 신용대출 3천만원, 월 상환액 60만원. 그 숫자들이 무거웠다. 마치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남편은 곧 퇴직이야. 나도 얼마 못 벌어. 노후 준비를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해? 아이들한테 짐 되고 싶지 않아.' 경자는 이불을 더 꽉 잡았다. 차가웠다. 남편 쪽 이불도 당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자기 이불만 더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렸다. 작아졌다.

지금은 그럭저럭 살고 있다. 남편 월급 250만원, 경자 월급 120만원. 합치면 370만원이니 생활은 된다. 하지만 노후는?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경자도 알고, 남편도 이제야 알게 됐다. 그렇다면 뭔가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남편은 오피스텔 갭투자가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아들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위험해요. 약사 선배님들도 힘들어하세요."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조영달 소장의 "정말 좋은 매물이에요", 미숙이의 "작년에 샀는데 올해 많이 올랐대요, 언니", 유튜버의 "지금이 기회입니다. 망설이면 늦습니다." 어느 목소리를 믿어야 할까?

경자는 눈을 뜨고 천장을 봤다. 어둠 속에서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은색뿐이었다. 깜깜했다. 월급 120만원에서 대출 상환 60만원을 떼면 남는 건 고작 60만원. 거기서 교통비, 통신비, 점심값을 빼면 얼마나 남을까? 남편 월급과 합쳐도 빠듯할 것이다. 수진이가 알바라도 하면 조금 나아지겠지만, 그걸 어떻게 말하나.

'하지만 감당할 수 있어. 임차인만 들어오면 괜찮아. 여의도는 수요가 많다고 했잖아.' 경자는 스스로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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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봤다. 형광 숫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새벽 2시. 내일이면... 아니, 오늘이면 오후 2시에 실물을 본다. 12시간 후면 그 오피스텔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일단 보고 나서 결정하자.' 하지만 경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것을. 보기도 전에.

남편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책임은 당신이 져. 실패해도 나한테 탓하지 마." '알아, 여보. 내가 감당할게.' 경자는 속으로 대답했다.

눈을 감았다. 이번엔 숫자가 아니라 장면이 떠올랐다. 한강이었다. 한강이 보이는 오피스텔 10층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그 집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 중개사에게서 열쇠를 받는 순간. '내 집.' 비록 빚으로 산 집이지만. '내 집.'

경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결정했다는 것을.

십이 년 동안 슈퍼마켓에서 일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했다. 그런데 정작 손에 남은 건 천만 원이 고작이었다. 십이 년이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천만 원. 누가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자는 안다.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큰아들 민준이가 독립할 때 전세 보증금에 보탰다. 작은아들 민수가 서울로 떠날 때 월세 보증금에 보탰다. 아이들 대학 등록금, 생활비, 학원비. 그 돈들은 모두 경자의 월급에서 나갔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경자가 벌었고, 경자가 채웠다.

막내 수진이는 이제 막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원비가 얼마였던가. 수학, 영어, 논술. 매달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경자는 아꼈다. 비싼 옷은 사지 않았다. 미용실도 1년에 서너 번 정도만 갔고, 때로는 집에서 혼자 긴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유일한 취미인 동네 사우나를 즐길 뿐이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조금씩 모았다. 십이 년 동안 정말 조금씩.

사실 돈을 모을 형편이 못 됐다. 아이들 셋을 키우고, 교육시키고, 독립시키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던가. 하지만 그래도 경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에 십만 원이라도, 이십만 원이라도 따로 떼어놨다. 그렇게 모은 돈이 천만 원이었다. 십이 년의 시간과 땀이 녹아 있는 천만 원. 그 돈으로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잠이 왔다. 어둠이 경자를 감쌌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내일 오후 2시, 여의도, 한강이었다. 그리고 경자는 잠들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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