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4화, 토요일 아침
새벽 다섯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아니, 잠을 잔 건지도 모르겠다. 새벽 네 시쯤 천장의 금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그 금을 따라 시선이 벽을 타고 내려가 시계에 닿았고, 분침이 한 바퀴를 돌 때까지 경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늘이었다. 서울. 여의도. 15층. 8평. 한강뷰.
이불을 걷었다. 남편의 숨소리가 길고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방문 손잡이를 돌리는데 손바닥이 축축했다. 삐걱. 멈췄다. 숨을 참았다. 남편이 뒤척이는 기척. 이불 스치는 소리. 다시 고른 숨소리. 경자는 그제야 거실로 빠져나왔다.
* * *
소파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켰다. 화면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또 그 사진이었다.
몇 번을 본 사진이던가. 하얀 벽. 나무 바닥. 창문 너머로 아득히 먼 곳에 가느다랗게 걸린 수평선 하나. 조영달 소장은 그것을 한강이라고 했다. 경자는 화면을 확대했다. 축소했다. 다시 확대했다.
'진짜 한강일까.'
사진 속 그 가느다란 선이 한강인지 아닌지, 경자에게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조영달 소장의 목소리만 남아 있었다. '실제로는 잘 보여요. 15층이라 시야도 탁 트이고요.' 그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오늘 가봐야 알 수 있었다.
계산기 앱을 켰다. 손가락이 숫자를 두드렸다. 또 같은 숫자. 또 같은 결과.
3,000만 원. 14%. 월 60만 원. 10년.
숫자를 지웠다. 다시 눌렀다. 지웠다. 또 눌렀다. 답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지만 계산기는 매번 같은 숫자만 내놓았다. 경자는 휴대폰을 소파 위에 엎어놓았다. 어둠이 다시 거실을 감쌌다.
여섯 시가 넘자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남색으로, 남색이 회색으로, 회색 끝에 주황빛 한 줄기. 경자는 샤워실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어깨 위로 쏟아질 때, 잠깐이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순간이. 하지만 잠깐뿐이었다. 물소리 사이로 숫자들이 다시 밀려들어왔다.
옷장을 열었다. 손이 검은색 블라우스에 닿았다 멈추고, 베이지색 바지 위에서 머뭇거렸다. 너무 수수하면 안 되고, 너무 차려입어도 안 되는. 중개사 앞에서 무엇처럼 보여야 하는 건지, 경자는 생각했다. 믿을 만한 사람? 돈이 있는 사람? 아니면 그냥, 진지한 사람?
거울 앞에 섰다. 파운데이션. 아이브로우. 립스틱. 슈퍼마켓에 출근할 때는 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12년 동안, 아침마다 유니폼에 이름표를 달고 나가던 얼굴에 오늘은 다른 것을 입혔다. 립스틱을 바르는데 손이 떨려 입술 밖으로 번졌다. 휴지로 닦았다. 다시 그었다.
'경자야, 진정해.'
거울 속의 여자가 낯설었다. 화장한 얼굴, 단정한 옷, 어딘가로 가려는 눈빛. 슈퍼마켓 캐셔 경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러 가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 * *
방문이 열리는 소리. 슬리퍼가 마루를 끄는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세수하는 물소리.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화장한 아내의 얼굴을 봤다. 단정한 옷을 봤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한 번 열었다 닫았다. 부엌으로 갔다.
커피 머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잉. 원두 갈리는 소리. 드르륵. 물 끓는 소리. 보글보글. 그 소리들 사이에 부부의 침묵이 끼어 있었다. 쓴 커피 향이 거실까지 번져왔다. 30년을 함께 마셔온 그 냄새.
남편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왔다. 한 잔을 건넸다.
"오늘... 가는구나." "응."
경자는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끝에서 목으로 내려갔다. 남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이 전보다 더 굽었고, 뒷머리에 흰 것이 많아졌고, 정수리 쪽이 얇아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사람도, 나도, 이렇게 늙어가고 있었다.
'미안해, 여보.'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침은?" "기차에서 먹을게."
침묵.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 금리 인상, 물가 상승, 부동산 시장 전망. 경자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조심해서 다녀와." "응." "그리고..."
남편이 말을 멈췄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 듯, 하지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듯.
"보고 와서... 신중하게 결정해."
경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경자의 마음이 이미 기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 * *
가방을 챙겼다. 메모지. 펜. 계산기. 통장 사본. 신분증. 하나씩 넣을 때마다 가방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25년간 아껴 모은 1,000만 원이 통장 안에 숫자로만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무게는 경자의 어깨 위에 고스란히 실려 있는 것 같았다.
현관으로 향하는데 수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잠옷 차림. 헝클어진 머리. 방금 잠에서 깬 얼굴.
"엄마, 어디 가세요? 이른 아침에." "서울. 친구 만나러."
거짓말이 입에서 너무 쉽게 나왔다. 그 쉬움이 경자를 찔렀다.
"서울이요? 옷 되게 잘 입으셨네."
수진이가 엄마의 블라우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립스틱도, 화장도. 평소의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까. 하지만 스무 살은 엄마의 거짓말을 의심하지 않는 나이였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응, 저녁에 올게."
* * *
현관문을 열었다. 대문을 나섰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11월 끝자락의 바람이었다. 차갑다기보다는 날카로웠다. 골목의 은행나무가 마지막 잎을 떨구고 있었고, 그 냄새가 바람에 섞여 코끝을 스쳤다. 발밑에서 마른 잎이 바스락거렸다. 하늘은 높고 맑았지만, 경자에게 그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사진 한 장만 남아 있었다. 하얀 벽. 나무 바닥. 그리고 15층 창문 너머,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한강.
택시를 잡았다. 뒷좌석에 올라탔다.
"동대구역이요."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대구의 거리가 흘러갔다. 12년 동안 출퇴근하던 슈퍼마켓 앞을 지났다. 형광등 불빛이 벌써 켜져 있었다.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곳. 오늘 경자의 자리는 비어 있을 것이다. 미숙이가 투덜거리겠지. '경자 언니 어디 간 거야, 바쁜 토요일에.'
'미안, 미숙아.'
경자는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 * *
동대구역. 토요일 아침의 역사는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행, 부산행, 광주행. 모두 제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행. 출장. 만남. 그리고 경자처럼,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일.
KTX 개찰구에 휴대폰을 대었다. 삑. 통과.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9시 반 서울행 KTX가 서 있었다. 하얀 유선형의 몸체. 경자는 자기 칸을 찾아 올랐다.
창가석이었다. 앉았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가방 안에서 메모지와 펜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심호흡. 한 번. 두 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점점 빠르게.
대구가 뒤로 밀려났다. 아파트 단지가, 공장 지붕이, 갈색 들판이, 하나씩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낯선 것들이 다가왔다. 경자는 창밖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가방 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펜을 들었다. 무언가를 적으려 했지만,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랐다. 질문? 확인 사항? 아니면 기도?
펜을 쥔 채 멍하니 창밖을 봤다. 기차가 터널에 들어갔다. 어둠이 왔다. 창문에 경자의 얼굴이 비쳤다. 화장한 얼굴. 블라우스. 그리고 그 뒤로 반사되어 보이는 빈 좌석들.
터널을 빠져나왔다. 다시 빛이 들어왔다. 경자는 메모지에 한 줄만 적었다.
'꼭 확인할 것 — 한강이 정말 보이는지.'
펜을 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머지는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KTX는 북쪽으로 달렸다. 서울을 향해. 여의도를 향해. 15층 1505호를 향해. 경자가 아직 모르는 것들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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