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Saint Sulpice 성당에서 펼쳐진 라이브 조명과 음악
"엄마, 이건 꼭 봐야 해요."
딸아이가 건넨 핸드폰 화면 속, Saint Sulpice 성당은 빛의 파도에 잠겨 있었다. 웅장한 기둥을 타고 흐르는 색채들, 그 위로 울려 퍼지는 오르간 선율. 영상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
심장이 쿵, 뛰었다.
이건 영상으로 보는 것과 그곳에 서 있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일 거라는 예감이 왔다. 주저 없이 티켓을 예매했다. 이미 마음은 성당 안 어둠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공연 시작은 저녁 7시. 30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성당 앞엔 이미 긴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차가운 11월 바람이 뺨을 할퀴었지만, 기다림은 달콤했다. 곧 들어설 그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발끝까지 차올랐다.
입구를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장엄함이 가슴을 눌렀다. 높이 솟은 천장, 정교하게 새겨진 기둥, 그리고 어둠 속에서 더욱 신비로워진 바로크 양식 건축. 성당은 마치 막이 오르기 전 무대처럼,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Saint Sulpice 성당은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하지만 크기만으로 이곳을 설명할 순 없다. 1646년 첫 삽을 뜬 이후 완공까지 무려 20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이 건물이 단순한 예배당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임을 말해준다.
성당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두 개의 탑이다. 비대칭으로 서 있는 이 탑들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디자인이다. 왼쪽 탑은 73미터, 오른쪽 탑은 68미터. 이 미묘한 불균형이 오히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안으로 들어서면 세계가 바뀐다. 33미터 높이 천장이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고, 거대한 기둥들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다. 벽면을 채운 프레스코화와 외젠 들라크루아의 벽화는 종교적 서사를 예술로 승화시킨 걸작들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자랑은 오르간이다. 18세기에 제작된 이 악기는 6,500개가 넘는 파이프로 구성되어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음악회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다. 그 소리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폐쇄되었다가 다시 문을 연 이 성당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문화와 예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면서 전 세계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이나 영화로 만난 Saint Sulpice와, 직접 그 공간에 서 있을 때 느껴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200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기, 수많은 기도와 음악이 스며든 벽,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다.
드디어 불이 꺼졌다.
어둠이 성당을 집어삼켰다. 심장 소리만 크게 들리는 정적 속에서, 첫 번째 빛줄기가 천장을 가로질렀다. 그 순간, 숨이 멎었다.
조명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성당 벽면을 타고 흘렀다. 붉은빛이 기둥을 감싸며 피어오르다가, 푸른 물결로 변해 천장을 적셨다. 금빛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보랏빛 안개가 공간을 채웠다.
그리고 오르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웅장하고 깊은 음색이 성당 구석구석을 울렸다. 저음은 바닥을 진동시켰고, 고음은 천장을 뚫고 하늘로 치솟는 듯했다. 6,500개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영혼을 흔드는 파동이었다.
빛과 소리가 춤을 췄다.
음악이 고조되면 조명도 격렬하게 타올랐고, 선율이 잔잔해지면 빛도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성당 건축은 그 모든 것을 담는 완벽한 그릇이었다. 200년 전 장인들이 새긴 조각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살아났고, 높은 천장은 음향을 품어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공연은 성당 역사와 예술 작품을 주제로 구성되었다. 들라크루아의 벽화가 조명을 받아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평소 멀리서만 보던 그림들이 빛 속에서 숨 쉬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시간은 멈춘 듯했다. 관객 모두가 숨죽이고 공연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지고 조명이 꺼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폭풍 같은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성당 문을 나서자, 밖에는 또 다른 관람객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성당 밖 광장까지 뱀처럼 이어진 행렬을 보며, 일찍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깨달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스쳤지만, 가슴속엔 여전히 따뜻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오르간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눈을 감으면 춤추던 빛들이 다시 떠올랐다.
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꼭 봐야 해. 내일이라도 가." 영상으로 본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 감동을 말로 전하기엔 언어가 너무 부족했다.
Saint Sulpice에서의 밤은 단순한 공연 관람이 아니었다. 200년 역사가 숨 쉬는 공간에서, 빛과 음악이 만들어낸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한 시간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건축과 음악과 빛이 하나로 어우러진 그 순간은, 파리 유학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50대 중반, 늦깎이 유학생으로 파리에 온 것이 때론 두렵고 외로웠지만,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믿게 된다.
늦어도 괜찮다. 50대에 시작한 파리 생활이 증명한다. 꿈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다만 용기를 요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