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무료 관람의 날,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예술혼

by Selly 정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의 특권

파리에서 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매달 첫 번째 일요일,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의 무료 관람.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공짜"라는 단어에 끌렸다. 유학생의 빠듯한 용돈으로는 매번 미술관 입장료를 내기가 부담스러웠으니까. 하지만 막상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단순한 '공짜 혜택'이 아니라 파리가 시민들에게 주는 '문화적 선물'이라는 것을.


16구에서 만난 예술의 성지

파리 16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안에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은 센 강변에서 에펠탑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 지하철 9호선 이에나(Iéna) 역에서 내려 5분만 걸으면 되는 접근성도 완벽하다.

약 15,00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이곳은 20세기와 21세기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무료 관람은 지하 1층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지하 1층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야수파(Fauvism)의 강렬한 색채들이었다.

"이게 정말 100년도 더 된 그림이야?"

앙리 마티스의 작품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의 『라 댄스(La Danse)』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붉은색과 초록색, 파란색이 이토록 자유롭고 대담할 수 있다니. 마치 색깔들이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와 내 마음속에서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여행 에세이를 쓰면서 늘 고민하는 것이 '색깔'의 표현인데, 마티스 앞에서는 그런 고민이 무색해졌다. 그는 색깔 자체로 감정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피카소가 부숴뜨린 세상

야수파의 강렬함에서 벗어나 입체파(Cubism) 섹션으로 향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앞에서는 아예 다른 종류의 충격을 받았다.

"왜 얼굴을 이렇게 각지게 그렸을까?"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다시 보니 보였다. 피카소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고정된 시각'을 완전히 해체시켜 버린 것이었다. 마치 한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것처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구나 싶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매일 겪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올리비에 비르의 철학적 메시지

특별전시로 올리비에 비르(Olivier Beer)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다양성과 상호 존중'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앙 홀에 마련된 참여형 코너였다. 색연필과 도화지가 놓여 있어서 관람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놓았더라.

"미술관에서 그림을 그려도 되는 거야?"

처음엔 주저했지만, 다른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를 냈다. 파리의 일요일 오후를 작은 스케치로 남겨보았다. 미술이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소통'하는 것이라는 걸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에펠탑을 바라보며 든 생각

미술관을 나와 센 강변으로 향했다.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철골 구조물이 마치 거대한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파리는 정말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네."

하지만 발밑을 보니 현실이 보였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담배꽁초들. 파리의 청소 파업은 이미 유명하지만, 직접 보니 좀 안타까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인데 관리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그래도 이런 소소한 불편함이 파리의 매력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파리의 매력인 것 같다.

미술관에서 보낸 3시간은 단순히 '문화생활'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위로와 영감을 동시에 주는 시간이었다.

마티스의 자유로운 색채는 내 안의 억압된 감정들을 해방시켜주었고, 피카소의 파격적인 시도는 나에게도 용기를 주었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특히 여행 에세이를 쓰는 입장에서, 이런 예술적 영감은 정말 소중하다. 똑같은 장소를 봐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예술가들이 보여주고 있으니까.


파리에서 문화생활하기

파리에서 학생으로 살면서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이런 문화적 혜택들이다.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의 무료 관람은 물론이고, 학생 할인, 젊은이 할인 등등... 파리는 정말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도시다.

오늘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 혼자서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느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걸.

파리의 일요일은 특별하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도시 전체가 한 템포 느려지는 이 날,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은 한 주의 피로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생각났다. 마티스의 붉은색, 피카소의 기하학적 형태들, 그리고 내가 직접 그린 작은 스케치까지.

예술은 정말 마법 같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100년 전 화가의 마음과 지금 내 마음을 연결해주니까.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 위치: 11 Avenue du Président Wilson, 75116 Paris
� 교통: 지하철 9호선 Iéna 역, RER C Pont de l'Alma 역
⏰ 운영시간: 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상설전 무료, 특별전 유료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전체 무료)
� 주요 소장품: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20-21세기 현대미술
� 추천: 도슨트 투어 (프랑스어, 영어 가능)


� 꿀팁:

무료 관람일에는 사람이 많으니 오전 일찍 방문 추천

에펠탑까지 도보 10분, 함께 관광하기 좋음

근처 팔레 드 도쿄도 함께 관람 가능


'파리 일기'는 파리에서의 일상과 문화 체험, 그리고 삶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연재 에세이입니다. 예술과 문화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파리에서의 경험들을 계속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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