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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끝없는 사랑의 순환

by Selly 정

‘채무’라는 단어는 흔히 재화나 현금을 채권자에게 갚아야 할 의무를 뜻한다. 그렇다면 ‘채무자’란 그 의무를 짊어진 사람을 일컫겠지.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채무라는 것이 단지 돈이나 재화에만 국한된 개념일까? 어쩌면 우리 삶 속에서 받은 고마움과 감사함 또한 하나의 채무가 아닐까?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아가는가.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들 때 건네받은 작은 도움, 그리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의 신뢰까지.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빚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어떤 채무를 지고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 채무를 나는 어떻게 갚아가고 있을까?

물론 은행 대출이나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금전적 빚도 분명히 채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물질적인 빚이 아니다. 내가 진정 고민하고 싶은 것은 나와 연결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진 채무다. 그들에게 받은 사랑과 신뢰,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은혜들 말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짊어진 채무 중 가장 무거우면서도 소중한 것은 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것일 것이다. 내 마음속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이는 단연 아버지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출근길에 오르셨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둠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등대와도 같았다. 7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30대의 젊은 아버지에게 얼마나 버거운 짐이었을까? 이제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

어느 날, 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다리를 감싼 하얀 붕대는 마치 아버지의 고통과 희생을 상징하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가 오토바이로 출근하다 트럭과 부딪혀 논두렁으로 굴러떨어졌다는 것. 그 후 오랫동안 목발에 의지해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영웅의 행진과도 같았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성실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는 내 눈에 오직 직장과 가정만을 오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성실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독불장군 같은 면모에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그의 근면함과 성실함은 내게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아버지의 헌신과 재능으로 일구어낸 우리 가족의 삶. 나는 그에 대한 채무자임을 깊이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그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어떤 이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또 어떤 이들은 부모님 곁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돕는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내 삶을 꾸려가는 데만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은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주름진 얼굴, 굳은살 박인 손, 그리고 늘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가시던 뒷모습.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버지에 대한 채무. 그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것이 아닌, 사랑과 존경, 그리고 감사함으로 갚아나가야 할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나의 가장 큰 채무는 어머니라 할 수 있다. 엄마를 떠올리면 늘 눈물이 난다. 엄마에 대한 고마움은 세상 누구보다 크고 많다. 물론 나도 엄마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고, 욕도 많이 들었다. 어린 시절, 시골집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나를 쫓아오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서운해서 밥을 먹지 않고 떼를 쓰며 울던 내 모습도 생생히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돈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던 시절이었다. 내가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그 집주인을 따라 이사 간 집에서 엄마에게 화를 내며 대들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상황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울며 대들던 나는 된통 엄마에게 혼났다.

그런 어두운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언제나 내 편에서 나를 격려해 주셨다. 아버지를 설득해 당시 유명한 고등학교로 나를 보내주셨고, 대학 4년 동안 시골집에서 광주로 통학할 때도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따뜻한 밥을 차려 주셨다. 대학 시절 변변찮은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못했던 딸이 광주에서 독립할 수 있도록 집을 얻어 주셨고, 결혼 전까지 알바로 겨우 생활하던 딸에게 넉넉한 용돈으로 부족함을 채워 주셨던 분이다.

결혼 후에도 엄마의 사랑은 끊이지 않았다. 바쁜 나를 대신해 3명의 손주들을 돌봐 주셨고, 엄마가 해준 각종 반찬과 김치들로 언제나 내 식탁을 풍성했다. 해외 생활 중에도 한국을 방문하는 나를 위해 딸이 좋아하는 대추와 전통 다과들로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병원에 계신다. 골반 부상을 당한 이후 요양병원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씩 피 주사를 맞으며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계신다. 파리에 살고 있는 나는 언니를 통해 가끔씩 엄마 소식을 듣는다. 멀리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쓰리고 아리다.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이처럼 풍성하고 넘치며 때로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받은 자식인 나는 그 채무를 온전히 갚지 못한다. 아니, 갚으려는 노력조차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생일이나 명절에 드리는 작은 용돈, 가끔씩 드리는 전화,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때 사 드리는 음식들—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변제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어떠한 불평도 요구도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나의 작은 노력에도 감사함과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시며, 더 넘치는 섬김으로 되갚아 주신다.

그분들은 자신을 결코 채권자로 생각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식을 향한 사랑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여기시며 기쁘게 감당하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의 채무는 밑 빠진 항아리와 같아서 아무리 갚아도 끝이 없다는 것을.

부모님께 받은 이 사랑의 빚은 아마 그분들이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평생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동안,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를 계속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부모님은 일곱 명의 자녀를 키우셨지만,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 후 부모님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자녀들이 독립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잘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큰 효도라는 것을. 그래서 부모님에게서 받은 무한한 사랑을 떠올리며, 나 역시 자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월급의 70% 이상을 교육에 쏟아부었다. 마치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행인 것처럼,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로의 여정을 준비시켜 주고 싶었다. 그것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듯 대학 시절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었고, 졸업과 동시에 IT 대기업과 대학병원에 정식 직원으로 취직했다. 유학 시절 받은 대출도 스스로 갚아나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뿌듯함으로 채워졌다. 셋째는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다녔고, 심지어 지금은 두 아들이 나의 파리 월세를 지불해주고 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코 풍족하거나 넉넉하게 뒷바라지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인데, 우리가 해준 것보다 두 배, 세 배로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마치 우리가 심은 작은 씨앗이 거대한 나무로 자라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요즘 취직한 아들들이 용돈을 보내오고, 남편의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아 파리 월세마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 부모로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때는 부모님께 진 빚이 있더니, 이제는 자식에게 빚을 지는 것 같아 그들이 보내온 돈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주변 사람들은 기쁘게 받으라고 한다. 용돈은 자식들의 '감사의 표시'이니 즐겁게 받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자식에게서 받은 사랑의 채무는 왜 이리 자유롭지 못한지 모르겠다. 마치 끝없는 여행에서 짐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채무이든, 돈의 채무이든, 재화이든, 그 어느 것도 채무자로 살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부모의 채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채무자로 살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는 부모님처럼 영원히 사랑의 채권자로 남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사랑의 채무와 채권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전하고, 또 그 자식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주는 과정이 반복되는,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여행처럼 말이다. 때로는 채무자로, 때로는 채권자로 역할은 바뀌겠지만, 그 핵심에는 변함없는 사랑이 자리 잡고 있음을 믿는다.

나는 부모님께 영원한 사랑의 빚쟁이로 살아가겠지만, 동시에 자녀들에게는 잊지 못할 은혜의 채권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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