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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의 오랜 여정, 그리고 새로운 친구로서의 자리

개인적인 술 경험과 그 변화, 그리고 술이 주는 감정의 의미

by Selly 정

목차 :

1. 첫 만남: 막걸리와의 추억

2. 대학생 시절의 재발견: 핑크레이디

3. 가족과의 유전적 관계

4. 파리에서의 변화: 술과 여유

5. 막걸리의 그리움과 현재의 술

6. 술과 인생의 관계



첫 만남: 막걸리와의 추억

내 인생 속 술 이야기는 중학교 시절, 처음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으로 시작된다.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은 그때 참으로 대단했다. 친구와 몰래 마시고, 그날따라 웃음도 많고 노래도 잘 나왔다. 속 얘기까지 술술 나왔으니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작스레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오더니 결국 속이 뒤집히며 토해버렸다. 그날의 불쾌함은 말로 다 못할 만큼 강렬했다.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생 시절의 재발견: 핑크레이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술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생겼다. 특히 '핑크레이디'라는 술 이름이 나를 매료시켰다.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달콤하고 알코올 도수가 낮다는 소문에 끌려 친구를 졸라 술집에 갔다. 삼각형 잔에 담긴 핑크빛 칵테일을 처음 본 순간, 심장은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신 핑크레이디는 정말로 이름처럼 달콤했다. 순간적으로 행복감이 나를 감쌌고, 예전 사춘기 때의 기분 좋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나 역시나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친구가 내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도 결국 집에 돌아와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핑크레이디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았다.



가족과의 유전적 관계

그 이후로도 술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우리 가족 중 저를 포함한 4명이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아빠도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라 그저 '유전'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몸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다는 의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파리에서의 변화: 술과 여유

나이가 들면서 신기하게도 술에 대한 반응이 달라졌다. 요즘은 파리에서 맥주와 와인을 가볍게 즐기며 여유를 배우고 있다. 여름에는 얼음을 가득 넣은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베이컨 소시지에 와인 두세 잔을 곁들이곤 한다. 예전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거나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알맞은 적당함 속에서 술을 즐기게 되었다.

특히 파리에서는 와인과 함께하는 식사가 자연스러운 문화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식당에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막걸리의 그리움과 현재의 술

지금은 가끔 한국의 막걸리도 그립다. 막걸리의 부드러운 질감과 약간의 쌉싸름함이 생각날 때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몰래 마셨던 추억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와인은 그저 알코올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인과 맥주는 나에게 조금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과거에는 얼굴이 붉어지고 속이 불편해지던 아픈 기억들로 거리를 두었지만, 지금은 한여름 더위를 달래주는 맥주 한 잔, 추운 날씨에 마음을 녹여주는 와인 한 잔처럼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술과 인생의 관계

물론 예전처럼 무리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맥주를 통해 적당한 즐거움과 추억을 쌓는 법을 배웠으니까. 어쩌면 술과의 관계는 인생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처음엔 두렵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와인이나 맥주 같은 술은 나와의 오랜 여정을 통해 이제는 단순히 알코올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인생의 작은 순간들을 함께하는 친구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나는 술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물론 적당히, 가능하면 무알콜로 건강하게 말이다.


이렇게 술과의 관계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이제는 술이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친구와 함께 더 많은 추억을 쌓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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