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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이야기 14:튀니지에서 딸의 언어 장벽 극복기

늦은 시작,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꿈

by Selly 정

딸은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 2학년인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학교에 입학하려던 딸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학교장은 딸이 불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바칼로레아를 준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어는 할 수 있지만 불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바칼로레아를 준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학교장은 중학교 3학년으로 학년을 낮추어 불어에 적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조언했습니다. 같은 반 학생들과는 3살에서 4살 정도 차이가 났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며 이를 감내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국제학교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튀니지 아이들과는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그 중에도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있어서 서로 생각과 말이 통하고, 영어를 할 수 있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2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친구를 빨리 만들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불어를 하는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교 수속이 잘 이루어졌고, 딸은 그 다음날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한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벨기에에 살았던, 남편이 튀니지와 벨기에 국적을 가진 '한나'라는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자상하고 차분하며, 무엇보다 현지인 발음의 불어를 구사하기에 딸의 일대일 과외샘으로 제격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딸은 1주일에 3번 또는 5번씩 불어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알았기에, 다행히 딸은 불어 공부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학교에서도 때마침 한류 문화가 튀니지까지 확산되는 시기여서 한국에서 온 딸은 왕따를 당하거나 외면받지는 않았습니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한창 충만한 사춘기 여학생들은 딸이 궁금증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불어도 아랍어도 되지 않아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지만, 딸은 그들의 호기심 대상이었기에, 학교생활도 조금씩 잘 적응해 갔습니다. 한나 선생님과의 매일 매일의 불어 공부와 또 공부하면서 한나 선생님이 딸에게 격려와 용기와 좋은 조언들을 해 준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한나 선생님에게 한국 음식, 깁밥이나 불고기, 잡채 등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녀의 열정과 진심 어린 조언들이 조금이나마 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나이 차이는 나중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자주 해주고 격려를 하였지만, 현실에서, 그리고 교실에서 딸이 실제적으로 느끼는 나이 차이에 대한 어려움과 외로움은 우리가 깊이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과외 선생님이나, 아랍어 배우러 유학 온 여학생들과 교제하면서 이런 마음의 갈등과 번민, 내면의 외로움이나 열등감 등을 조금이나마 견디고 잘 극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다행히 한나 선생님은 딸에게 친절하게 잘 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교과 과목에 대한 과외는 해 주지 못했지만, 딸이 불어를 기초부터 차근 차근 배워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나 선생님은 불어 과외샘이지, 학교 수업을 가르쳐주는 과외샘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그녀의 진심 어린 과외에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은 다른 과외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특히 바칼로레아 시험을 준비할 때는 과외 선생님을 2명을 고용했습니다. 언어 공부하는 한나 선생님, 그리고 바칼로레아 시험을 대비해주는 프랑스인 고등학교 현지인 샘을 고용했습니다. 현지인 샘은 우리 나라 학력고사 같은 바칼로레아 시험을 대비해주는 과외샘이었기에 수업료가 배가 비쌌습니다. 언어와 바칼로레아 시험 준비일 때는 사실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기였습니다. 두 과외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활비를 줄이고 오직 딸의 과외에 모든 생활비를 충당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딸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튀니지에 와서 중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2년 반을 통해 그 어려운 바칼로레아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영어가 아닌 불어를 기초부터 배워서 3년 반 만에 프랑스 학력고사에 합격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불어가 아랍어만큼 어려운 언어라고 프랑스 현지인들도 이야기합니다. 나도 실제로 불어불문학과를 나오고, 지금 언어학교에서 불어를 3년 이상 공부했지만 불어 레벨 시험 Delf B2 자격증을 아직도 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딸이 그만큼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진심을 다해서 열심히 가르쳐준 한나 선생님과 다른 과외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은 그렇게 무사히 튀니지 프랑스어 국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프랑스 리옹 혼강(Rhône) 옆에 위치한 리옹 제2대학교(Université Lumière Lyon 2)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의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유학생으로 와서 언어를 배우는 것과 학교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학교에 적응하고 언어 레벨 시험이 아닌 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통 유학을 생각하면 이른 나이에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 아니면 적어도 중학교 초반 때는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부모와 함께 간다면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그리고 부모의 적극적인 협조가 조금이라도 뒷받침이 된다면 충분히 늦은 나이에도 도전할 수 있고, 유학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J. 폴 게티는 미국의 사업가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와 관련된 가장 큰 위험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나이에 대한 제한을 넘어서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각 단계에서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인생은 10대에 시작되고, 20대에 형성되고, 30대에 이해되고, 40대에 평가되고, 50대에 반성되고, 60대에 만족되고, 70대에 완성된다."


나는 딸이 특별히 똑똑하거나 매우 뛰어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하고자 하는 의지와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노력이 모든 힘든 언어의 장벽들을 극복해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과외 선생님이 도움을 받아가면서 스스로 불어를 습득하고자, 불어로 프랑스 역사를 배우고, 불어로 수학을 배우고, 어려운 통계학을 배운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어려워겠는가? 한국어로 배워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그러나 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고 싶다는 강인한 열정과 소원이 이 모든 언어의 어려움을 하나씩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47세에 미국 석사에 도전하고 취업에 성공한 주부의 사례가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계획을 확고히 잡았잖아요. 나는 여기서 내 이름을 찾아야 되겠다, 내 삶을 다시 찾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그런 힘든 것들이 다 이겨내질 수 있더라고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지금이라도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면, 또 부모로서 여유가 된다면 자녀의 의지와 노력, 열정과 소원을 믿고 지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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