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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샤펠 성당, 빛의 성서를 찾아서

생트 샤펠의 아름다움과 역사, 그리고 감동의 순간들

by Selly 정


생트 샤펠(Sainte-Chapelle) 성당을 찾아서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의 첫 일요일, 파리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습니다. 오늘은 파리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 개방되는 날이었죠. 그 중에서도 제 발걸음은 자석에 끌리듯 시테 섬(Île de la Cité)에 자리 잡은 생트 샤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과 성경의 12가지 이야기를 유리에 담아낸 그곳, 평소 13유로나 하는 입장료가 무료라니 놓칠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생트 샤펠은 1238년부터 1248년 사이에 단 7년 만에 건설되었습니다. 루이 9세(Louis IX)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십자가의 일부분, 그리고 다른 수난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죠. 이 성당은 거의 전체가 유리로 된 거대한 성물함처럼 설계되었으며, 우아하고 대담한 건축 양식이 특징입니다.

4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눈부신 화려함은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죠. 언젠가 꼭 다시 방문하리라 다짐했던 이유는, 한 번의 방문으로는 이 성당의 모든 것을 느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만 매료되었지만, 이번에는 그 숨겨진 역사와 의미를 천천히, 그리고 깊이 있게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파리 12구(12e arrondissement)에서 출발해 29번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96번으로 갈아타면 팔레 드 쥐스티스(Palais de Justice) 앞에서 내려 생트 샤펠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여행은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버스가 전혀 다른 종점에 멈춰 섰을 때, 당황스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옆자리의 친절한 아주머니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빠른 프랑스어로 설명해 주시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par là'(저쪽으로)와 'à droite'(오른쪽으로)라는 단어만은 또렷이 들렸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버스에서 내려 설명대로 걸어갔습니다.

"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가다 보면 96번 버스 정류장을 만나겠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떻게든 버스를 탈 수 있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파리의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3분, 4분... 시간이 흘러도 버스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96번 버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쁜 마음에 버스 방향도 확인하지 않고 올라탔죠. 하지만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겁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괜찮아, 덕분에 파리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잖아.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파리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구글 맵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향의 96번 버스를 탈 수 있었고, 24분 후에야 드디어 생트 샤펠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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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관람일이라 그런지 웨이팅 줄이 센 강(Seine)변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지루함이나 짜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성당을 곧 관람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 앞에는 일본인 모녀가, 그 앞에는 영어권에서 온 듯한 연인이 서 있었고, 뒤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종알거리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손미나 작가의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라는 에세이를 들었습니다. 요가 강사와 나누는 대화 중 '내면 부모, 내면 아이, 그리고 내면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와닿았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니 '내면 부모'가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규칙과 규율에 얽매여 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해야 해, 이것은 하면 안 돼, 이건 예의가 없는 거야..." 가끔은 '내면 아이'로 돌아가 순수하고 좀 더 자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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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성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뾰족한 탑들, 웅장한 기둥들, 그리고 섬세한 건축 양식이 어우러져 황홀경을 자아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불빛 속에서 빛나는 성당 내부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1층에서 한참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은 후,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바로 그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죠. 사방을 둘러싼 찬란한 유리화의 아름다움에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성당 내부에는 15개의 거대한 창문이 있는데, 각각 약 15미터 높이로 1,113개의 성경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13세기의 걸작으로, 창세기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서쪽 큰 장미창은 미래와 종말을 묘사하고 있죠.

이번에는 안내서를 꼼꼼히 읽으며 각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이 유리 위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 속에서 중세 사람들의 신앙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여행 작가가 된 것처럼 열심히 관찰하고 감상했습니다.

생트 샤펠의 건축은 고딕 양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높은 천장과 얇은 벽체, 그리고 리브 볼트 천장은 수직으로 뻗은 선을 강조하며 하늘을 향한 상승감을 줍니다. 벽면의 약 70%가 스테인드글라스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빛의 벽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성당은 상부와 하부 예배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상부는 왕실과 가까운 이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하부는 궁전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었죠. 12사도의 조각상들이 기둥을 장식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설교가 교회의 기둥이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다 문득 주변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고, 어떤 아이들은 지루한 듯 투덜거렸습니다. '저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낄까? 이 경험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성당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일부 작품들은 복원이 시급해 보였습니다. 퇴색되고 변색된 벽화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조각상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은 여전했지만, 그 찬란함마저 점점 퇴색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약 1000만 유로의 비용을 들여 모든 스테인드글라스를 청소하고 보존했으며, 외벽 석조물을 청소하고 일부 조각품을 보수했습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외부에 혁신적인 열성형 유리층을 추가하여 보호 기능을 강화했다고 하니 다행이었습니다.

생트 샤펠은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신의 왕국'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며, 정치적으로는프랑스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술적으로는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죠. 이 성당은 중세 기독교 신앙과 예술, 그리고 프랑스 왕실의 권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역사적 걸작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생트 샤펠은 13세기 모든 예술의 융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 조각, 회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 금세공(성물함), 채색 사본(미사서와 복음서), 그리고 음악(성가대의 노래)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곳이죠. 빛의 벽으로 이루어진 건물, 또는 천상의 예루살렘의 이미지를 구현한 꿈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생트 샤펠은 팔레 드 쥐스티스(Palais de Justice) 건물들 사이에 둘러싸인 박물관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성당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예술품이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닌, 인류의 소중한 유산으로 영원히 보존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더욱 빛나는 모습의 생트 샤펠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파리의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센 강의 물결은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생트 샤펠에서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느낀 감동은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인간의 창조성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성당을 통해, 파리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 특별한 하루였습니다.생트 샤펠에서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느낀 감동과 깨달음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제 삶에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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