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2월 6일 여수 본영을 출발하다.
初六日辛卯 朝陰晩晴 四更初吹 平明二吹三吹 放
船掛帆 午時 逆風暫至 暮到蛇梁宿
1593년 2월 6일 신묘일.
아침엔 하늘이 잿빛으로 흐려 있었지만
해가 저물 무렵엔 구름이 걷히고, 맑아졌다.
새벽 네 시쯤, 첫 번째 바람이 불어왔고
그보다 조금 더 밝아진 이른 새벽,
두 번째 바람과 세 번째 바람이 연이어 불었다.
나는 그 바람결을 느끼며
드디어 배를 띄웠다.
돛을 올리고, 출항하였다.
정오 무렵,
거슬러 오는 맞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잠시 배가 밀리며 멈칫했지만
나는 방향을 꺾지 않았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마침내 사량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七日壬辰 晴 曉發直到見乃梁 右水使元平仲已先
至 與之相話 奇叔欽來見 李英男李汝恬亦來
1593년 2월 7일 임진일
오늘은 하늘이 맑고, 바람도 고요하였다.
나는 동이 트자마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배를 띄웠다.
쉬지 않고 물길을 따라 나아가
마침내 견내량에 도착하였다.
이미 경상우수사 원균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는 곧 그와 마주 앉아
요즘의 군사 상황과 마음속 근심들을 함께 나누었다.
잠시 뒤,
기숙흠(奇叔欽)이 내게 인사하러 와서 보고했고,
이영남(李英男)과 이여염(李汝恬)도
차례차례 나를 찾아왔다.
初八日癸巳 晴 朝嶺南右水伯到船 極言全羅右水伯後
期之失 今刻先發云 余力止待之 約以今日日中當
到 午時 果然張帆來會 望見無不欣躍欣躍 至則所率
未滿四十隻 卽日申時發船 初更到溫川島 簡于本營
1593년 2월 8일, 맑음.
아침 일찍,
경상도 수군을 이끄는 우수사(원균)가 내 배에 도착하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전라우수사(이억기)가 약속보다 늦었다며
몹시도 날 선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곧 출발하겠노라 말했다.
나는 그를 말렸다.
“오늘 낮 즈음에는 도착할 것이니,
지금은 잠시 멈추고 기다려봅시다.”
그는 잠시 머뭇이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오 무렵,
먼 수평선 너머로
돛을 단 전라우수사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하얀 돛대가 하나둘 시야에 들어오자,
배 위에선 수군들이 저마다 기쁨을 나누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제 발로 돌아온 그 순간,
기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가 이끌고 온 배는
마흔 척 밖에 안되었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오는 길을 택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그 마음을 먼저 받아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날 신시(申時, 오후 3~5시경)에 곧바로 배를 띄웠다.
밤이 깊어지는 초경 무렵(初更, 저녁 7~9시)
온천도(칠천도)에 도착해
오늘의 상황을 본영에 보고하였다.
참고 문헌:
『황현필의 이순신의 바다』,
『개정판 교감완역 난중일기』(노승석 옮김)을 참고하였습니다.
본 기록은 난중일기 원문을 직접 해석한 뒤,
위 문헌들과 대조하며 사실과 다른 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가능한 한 이순신 장군의 실제 기록과 뜻을 충실히 반영하려 노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