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미국, 그리고 한국
기내에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쯔고르바이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인데, 기내에서 songs of wanderers라는 제목으로 화면에 나왔다.
'Wander'는 방랑하다는 뜻이고, 'er'이 붙으면 '~하는 사람', 즉 wanderer는 방랑자인 집시를 말한다.
집시는 집없이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지닌 민족인데, 그들이 음악을 즐겼고 집시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재밌는 사실이다.
집도 없는데 어떻게든 빨리 집을 구하던, 일을 해서 먹고살 궁리를 해야할 텐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다니는 집시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세상에는 분명 집이나 먹고사는 문제, 즉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
오클랜드 시티에서 만난 길거리 악사
https://drive.google.com/file/d/19q9fTRZl8qfjscAZYKS3CaZ2ArtozIzY/view?usp=sharing
(<-click하여 듣기)
살다보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싶고, 지나가다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옷 한벌 들이고 싶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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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면서 학생들에게 문화를 가르치고, 스스로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더 가졌다. 강점기 역사가 나올 땐 함께 분노했고, 자국의 실수 앞에선 안타까워 했다. 또한 자랑스러운 역사 앞에선 뿌듯해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세상과는 반대로 가는 것 같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나는 이미 지나간 것을 배우고 가르친다고 생각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알고있는지 모르겠다. 난 이것이 교사의 숙명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이걸 인정해야 교사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나의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기간 친구의 숙소에 머물면서 우리는 각자의 기호에 따른 음식을 돌아가며 함께 먹었다.
먹다남기고 집으로 싸가지고 온 탄두리치킨(향신료의 풍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인도식 닭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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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아프리칸 계열의 미국인이고,
친구의 아내는 **키위지만
인디안(indian.인도계열)이다.
나는 아시안이지만 영어를 쓰고 논다.
난 이런 조합을 재밌어 한다.
상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상대방 문화의 음식을 같이 먹어보는 것 만큼 좋은게 없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가족들,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풍성해진다.
돌아오는 새벽 항공편, 나의 좌석에서 바라본 기내 스크린
돌아오는 길에는 귀에 익숙한 캐논변주곡을 재생해본다.
집시음악과는 다르게 형식적이고 절제미가 있는 정통 클래식이다. 나는 집시와 바흐의 두 모습 모두가 좋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현장에서 또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에게 고마움과 대견함을 느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 내 멍에는 쉽고 ...'
성서의 '쉽고'는 히브리어로 '적절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여전히 나는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기니, 이것은 신이 내게 주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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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사라사테가 집시스타일을 차용하여 만든 클래식 혼합곡
**뉴질랜드 현지인을 부를 때 쓴다. 비하하는 말이 전혀 아니며 뉴질랜더들을 스스로를 키위라고 부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