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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뀜

들리는 소리와 나의 인생이야기

by 요나와물고기

조바뀜. 영어로는 모듈레이션(modulation)이라 하고, 가요에서는 아웃트로 부분에 많이 사용된다.

곡에서 조바뀜은 감상하는 이에게 긴장감을 더해준다. 갑작스레 찾아와 곡이 곧 끝날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보통 복합적이고 양가감정을 느끼는 청소년기와 성인들에게 조바뀜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한편 아이들의 음악은 어떨까? 동요는 한없이 밝은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어릴 적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동요 몇 개는 슬픈 느낌의 음악들인데, 밝은 동요를 하도 들으니 지겨워서 특별히 기억해놓은 것이다. 그 정도로 어린이들의 음악은 티가 없고 맑다.

그러다가 청소년기를 거치고 성인이 되면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슬픈 정서를 띤 애절한 음악부터 흔들고 부수는 락 음악,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디음악까지 섭렵하여 들었다. 음악을 듣고 평을 하는 것도 좋아해서, 스트리밍 사이트에 이벤트에 참가하여 평을 남기면 주는 앨범 선물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이렇게 잡다하게 음악을 듣는 것을 멈추었다. 지금은 장르보다는 환경과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을 TPO라고 한다.(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친다) 음악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어울리는 음악이 다르다. 나는 학교인지, 차안인지, 집안인지에 따라 다른 음악을 듣는다. 또 아침에는 주로 클래식을 듣고, 차 안에서 이동할 때면 래퍼들의 힙합을 즐긴다. 체육관에서 몸을 단련할 때는 리드믹컬한 대중가요가 좋다.

한편, 나는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헤드셋을 사지 않는다. 그냥 그 장소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없다면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반려동물이 내는 소리 등등... 예전에는 큰소리가 나면 짜증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흠칫하다가도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한다. 도량이 커진 건지, 무뎌진 건진 모르겠지만.



요즘 학교에서는 영어가 많이 들린다. 이번에 배정받은 학교가 외국인들의 자녀가 많이 입학하는 연구단지 근처의 학교라 그렇다. 교과 전담실에서 영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며 필요에 따라 영어로 대화하며 의사를 주고 받는다.

한국의 초등 교육과정에서 영어는 주당 2~3시간이고 사립학교나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에서는 이를 웃돈다. 공교육을 벗어나더라도 영어는 단골손님이라, 주변에 교육에 신경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학원 원어민 교사에 대한 이야기, 누구는 어떻게 영어를 공부했느냐 등 자녀의 미래와 영어를 결부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난 감사하게도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 없다. 공포증도 없다. 그런데 학생들은 다른 것 같다. 한 학부모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본인의 자녀가 영어유치원에 갔다가 영어만 써야하는 유치원의 규칙에 아이가 강박증이 생겨 그때부터 영어를 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대단하다만, '얼마나 면박을 주었길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제적인 상황에서 습득된 언어지식은 마찬가지로 통제적인 상황에서만 능력을 발휘한다고 난 믿는다. 따라서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언어를 습득하게 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지라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는다면,

'팝송을 들으세요', 만약 아이라면 '챈트나 노래를 들으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단어를 외우거나 문장구조를 공부하는 건 한국에서 이미 너무 강조가 되고 있기 때문에- 재미를 붙이고, 의미있는 학습을 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만 열심히 보다가 가뭄에 단비같이 찾아오는 소설이나 시 한편을 보는 것과 같다. 영어 소설이나 동화도 강력 추천한다.

오클랜드 도서관에서 펼쳐보았던 동화책



영어 공부의 꽃은 해외 거주 경험이다. 살아가기 위해 물건을 사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 본다면 더이상 영어는 인생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된다. 너무 길 필요도 없다. 나는 긴 유학생활의 실패기 또한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기간이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영어를 꼭 잘할 필요는 없다. 나는 또래에 비해 수학을 잘 못했다. 그래서 잘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영어를 더 공부했다. 특히 입시에서는 영단어를 외우는 데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이것이 입시 결과로 이어져 내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공부에 별로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여전히 때가 되면 나는 영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배우고 사용해보는데 시간을 들인다.

고향인 대전에서 퇴근하면서.


오늘도 차안에서는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곡들이 먼저 재생되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키위 래퍼의 음악에 흠뻑 젖다가 주말에 있을 모임을 위해 잠시 다른 음악을 틀어본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가 계속되다가 조바뀜에 의해 감정이 상승곡선을 탄다. 이내 길을 잘못들까 싶어 듣기를 멈추지만, 조바뀜 후에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음악이 내게 선사해줄 기쁨을 알기에 - 조용히 미소지으며 운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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