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아동이 주는 선물

by 요나와물고기

문제 아동이 주는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오늘 한 학급에서 아이들을 맡아 수업하였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는데, 내가 말하면 반대로 행동하고, 친구들이 하지 말라고해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이었다. 음수대에서는 뒤에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은데도 혼자 오랜시간 물을 마시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수도꼭지를 붙든 채 자리를 비켜주질 않는 학생이었다.

인계를 해준 선생님의 메모에도 이 학생을 포함해 2명의 학생에 대해 '장난이 심하며 점심시간에 도서실 갈 경우 뛰지 않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안그래도 선생님 말을 듣는지, 친구로 아는지 모르겠는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하기에 바쁜데 이 학생이 자꾸 훼방을 놓으니 나도 참을 수 없었다.

근래에 여러 법 조항이 생기면서 교사들의 권위가 추락하며 터지는 사건 사고들로 인해 또 다른 법이 생겨났는데, 그 중에는 학생들을 훈육할 수 있도록 돕는 것들이 있었고, 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잘못된 행동을 심하게 할 때 마다 '경고'를 외치고, 3번 경고를 받을 경우에 받을 조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잘 알겠지만 영리한 학생들은 이런 경우 2번 까지 경고를 받고 조용해진다. 이 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경고받는 행동을 멈춘다고 끝이 아니다. 다른 방법을 또 찾아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 마치 법망을 피해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의 지능형 범죄자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교실은 사회가 아니고, 심판의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이 학생을 미래의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은 교사의 태도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미운 것을. 여기에 다른 바쁜 일이 겹치면 교사는 폭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머지 학생들에게 가는게 일반. 나 또한 그렇게 하지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마친 뒤, 이동수업을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인솔했다. 그리고 잠깐의 쉬는 시간동안 지인을 통해 말씀 한 구절을 보게 되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9:2-7)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찾아와 죄를 지은 사람의 책임에 대해, 그 원인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예수님은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랐다. 죄의 기원을 따지고자 하는 제자들의 생각과 달리 죄인을 사랑으로 바라본 것이다. 아마 제자들의 물음에는 궁금함 뿐 아니라 질타하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문제 학생을 사랑으로 보기 전에, 내가 받을 고통을 떠넘길 누군가를 찾기에 급급했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나는 고통을 회피하려는 인간이지만, 예수의 사랑은 고통 속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게 한다. 재밌는 것은, 이 생각의 전환이 나를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했으며 문제 학생이 좀 더 바른 행동을 하도록 그 즉시 이끌었다는 것이다. 4교시까지 씨름하다가 5교시에는 매끄럽고 문제없이 학생을 집으로 보낼 수 있었다.

또 문제학생으로 지목된 2명의 학생 중 다른 한명은 집에 가기 전에 나를 안아주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더 가르쳐달라는 의미로 알고 집에 가기전까지 자기 책상 속과 바닥 정리를 잘 마치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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