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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안 Jan 31. 2023

시엄마의 퇴직금

결혼하기 한 달 전쯤이었던 것 같다.

시엄마와 예비신랑 그리고 나는

홍대로 놀러갔다. 



당시 차가 없었던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한적한 지하철의 풍경과 함께

시엄마는 추억에 젖어드는 듯했다.



" 엄마는 처녀시절에 군무원이었어.

10년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둘 때 

퇴직금을 고소란히 너희 큰아빠

이민자금으로 내놓았지." 



너희 시아빠 쪽 큰 형님은 

미국에 이민 가셔서 너희 결혼식에는 

못 오실 거야. 



가족들 중 우리 결혼식에 못 오는 

분이 계시다면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 지금 생각하면 좀 그래.. 

이민 가는데 자금이 

모자라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 건데 

우리 어렵다고 할 때는 돌아보지도 않더라. " 



많이 듣던 레퍼토리 여서 놀라지는 않았다. 

우리 집도 비슷한 상황들이 많았으니까.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어쩜 우리 부모님과

성향이 이리도 비슷하실까...

속으로는 많이 놀랐다. 



엄마의 이모 되시는 분에게 빚보증 잘 못서서

고생한 것부터 

동생들 장가보내고 가게 차려주고

큰 외삼촌 도와준다고 집까지 팔았던 엄마...

우리 집에는 객식구가 없던 적이 없었다.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우리 집을 거쳐가지 않은 

가족들이 없었으니까.



문득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려고 하는 순간

시엄마는 한마디를 덧붙이신다.



"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고 남을 도와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이다. "




" 맙소사. 저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구나." 

우리 엄마가 얘기하던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끝은 있다는 

말이랑 비슷하면서도 더 강력한 한방 같았다.



그러니까 시엄마 선택으로 퇴직금을 준 건데

그게 선한 일이어서 하나님께서 나중에 갚아주신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한 일을 하면 잘되고 

악한일을 하면 끝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엄마의 믿음을 나무라거나 

틀렸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믿는 것이 소망이 되신다면 

그게 맞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난 이제 안다. 

선한 일을 한 것도 나의 선택이고 

내 마음 편하기 위해서 한일이라면

그게 꼭 착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신랑 얘기를 들어보면 

문이 잠기지도 않고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남을 도와줄만한 용기는 어디서 난 걸까? 




마음속 불편함 

내가 찢어지게 가난해도

어려워하는 사람을

도와줘야겠다는 의로움



나는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를 

빚대어 '자기 의로움'이라고 표현한다. 



자기의 의로움은 

일종의 도덕적 강박이다.

" 도와주지 않으면 벌 받을 것 같아서"

" 지금 도와줘야 내 일도 잘될 것 같아서."

내가 의롭기 위해서 일종의 나의 어려움을

희생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한 자기 의로움이다. 



자기 의로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부탁을 안 들어주면 마음이 

불편해서 힘든 거니까.

의롭고자 하는 도덕적 신념이 강한 사람인 것이니까. 



37년의 세월 동안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오고 있는 부모님과 더불어

시부모님까지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선량한 시민 중에는 더러 있을 것 같다. 



시엄마의 퇴직금은 이미 오래전에 

날아가버린 것이고

그걸 신이 갚아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일을 했으니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나 또한 자기 의로움이 있다는 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으면서 

내 마음속에는 부모님과 시부모님에게 뭔가를 

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항상 있다.



나에게도 도덕적 강박이 있다.

부모님이 물질적으로 힘들어하시는게 

일부는 나의 책임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성공하지 못해서 

우리 부모님이 70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이렇게 힘든 일을 하셔야 하네? 



티브이나 유튜브를 보면 성공해서

부모님 집사 드리고 차 사드린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저렇게 효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난 뭐 하고 살고 있는 거지? 

굉장한 조바심이 든다.



부모님의 삶과 나의 삶은  

별개인 것인데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 

이것이 나의 의로움이 이었다. 



시엄마의 날려버린 퇴직금도 

신이 해결해 줄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잘돼서 그만큼의 보상을 

받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게 나의 의로움이었다.



효도의 차원에서 부모님에게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은 

슬며시 내려 놔야겠다.



시엄마의 퇴직금처럼 

무작정 주겠다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돕고 싶지는 않다. 



내가 줄 수 있을 때 

다시 돌려받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계획되어 있는 자금을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싶다.   



시엄마의 퇴직금은 자기 양심을 지키게 했고

순간의 도덕적 강박은 벗어나게 했지만 

평생 보상을 기다리게 하는 희망고문이 되어 버렸다. 



생명과 연관된 일이 아닌 이상 

자기 의로움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시엄마의 날아가버린 퇴직금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 희망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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