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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안 Jan 30. 2023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한국인의 정을 잘 표현해 주는 초코파이 cm송 가사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살아온 날들이었다.



23살 노무법인 회사를 입사해서 

난 이런 마음가짐으로 회사생활을 했다.

대표노무사님, 직원노무사님, 본부장님

, 실장님, 과장님, 말단사원인 나

6명 정도 규모가 작은 회사였다.



이 작은 회사에서도 

암투와 서열다툼은 존재했다.



그리고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 마련이다.

내 사수인 과장님은 30대 후반의 여성 분이셨다. 

젓가락처럼 마르고 가늘었던 그분은 

누구보다 날카롭고 예민했다. 



갓 입사한  나의 결점은 무수히 많아 보였을 것이다. 

과장님은 틈틈이 대표님에게 나의 부족한 점을 어필하며

브리핑을 하셨다. 투명한 유리방으로 되어있는 대표실은 

방음도 잘되지 않았기에 대략은 알 수 있었다. 



대표님도 여자분이셨지만 굉장히 쿨한 분이었다. 

과장님의 불만은 대부분 묵살되었지만 지속적인

상소문에 한 번은 나를 불러서 직접적으로 물어보셨다.



" 잘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근데 맨날 서 과장님이 나한테 

하나하나 다 보고한단 말이야. 지안 씨 실수를. 지안 씨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입 꾹 다물고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 전 과장님에 대해서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 



" 답답하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까. 난 우리 애들한테도 얘기해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숨기지 말라고. 

우리 애들도 그것 때문에 엄청 혼나."



" 과장님 보시기에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게 나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대표님은 분명 다 아실 거야.

내가 일하는 것도 다 보고 계시고 

과장님이 하는 행동을 보면 답이 나올 테니까.

과장님이 말하는 게 이간질이라는 걸 알고 

나를 더 좋게 보실 거야.



알긴 뭘 아나.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다. 



거짓말도 계속 들으면 진짜인가? 믿는 것처럼

타인에 대한 험담도 계속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난 진심은 통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결국 침묵하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비난하는 사람은 결국 비난받을 것이다. 

종교적 신념과 나의 고집과 같은 생각은 짬뽕은 되어서 

나를 더욱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과장님은 대놓고 내 뒤에 와서 몇십 분씩 

내가 일하는 걸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과장님의 간섭이 너무 심하자

대표님은 나를 승진시켜 주면서

과장님이 관리하는 자문사를 

똑같이 반으로 나눠주셨다.



동등한 지위가 되어버리자

과장님의 불만은 더욱 거세졌고

경리업무를 나에게 인수인계 해주라는 

대표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온갖 핑계를 대며 끝까지

인수인계를 해주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나의 입지가 굳어질수록 

과장님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과장님의 꾸준한 이간질은 결국 대표를 

지치게 했고 나와 과장님 모두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년 차 정도 되었을 때 과장님이 

넌지시 퇴사를 권유하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설마..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는 말은 아니겠지? "

분명 그 말이었는데 나는 스스로 부정했다.

그렇게 나쁜 의도로 얘기했을 리는 없어.

나의 기준에서 타인도 바라봤던 것 같다.



" 설마.. 그럴 리 없어. 저렇게 생각한 건 아닐 거야. "

등등 나 혼자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 

커버해 주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했지? 싶다.


1년이 지났을 즈음 과장님과 둘이 점심식사를 하고

원인불명의 식중독으로 하루종일 토하고 

죽다가 살아났다. 며칠을 병가를 쓰고도 원인불명의

염증반응으로 상태가 계속 나빠져서 결국 퇴사하게 되었다.



메뉴는 달랐지만 나만 식중독이 왔다는 것이 

많이 이상하긴 하다.



밥 한 끼 먹고 이렇게 잘못될 수도 있는 거구나 했는데

밥 먹다 자리를 비웠던 순간이 스쳐 지나가긴 한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내 기준에서 바라봤던 세상과 사람은 진실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눈이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믿는 신념은 

그다음 직장에서도 계속되었고 

그렇게 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했던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사람은 억울할 뿐이었다.



묵묵히 일하다 보면 

오명을 벗고 광명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쯤 되면 참고 있었던 당사자는 암에 걸리든지

속이 새까맣게 타서 이미 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눈빛만 보아도 모른다.



한국인의 정 문화는 이상하게 발현될 때가 있다.

나처럼 그저 알아주겠지 하면서 

마음으로 하트만 날리는 경우 

그 하트는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무참히 꽂혀버린다.



부모님 세대에 이웃과의 온정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정문화로 인해 참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본다. 



진정한 정은 대화를 통해 쌓여가고 

깊어진다.



살아갈 날의 다가올 정은 말하고 소통하며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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