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줄을 탄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집에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이 등원시키고 잠깐 아침운동을 마치면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티브이를 보고 싶은
유혹을 참아가며 나를 채찍질한다.
" 집에서 일한다고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
티브이는 신랑 퇴근하고 잠깐 같이 보자.
오늘은 '나는 솔로'가 하는 날이다..."
이렇게 마음을 달래면서 대본을 짜고
방송 연습을 하고 새로 나온 방송프로그램들을
배우면서 틈틈이 블로그 작업과 인스타 관리
그리고 브런치 글을 써놓는다.
하원시간에 맞춰서 일하려면 점심도
대충 먹고 빨리 일을 마쳐놓아야 한다.
방송이 있는 날은 더 바쁘다.
방송 전 기획, 방송, 방송 후 피드백
쇼핑몰 홍보 포스팅도 직접 작성한다.
집에서 혼자 방송을 하다 보면
기획, 연출, 쇼호스트를 전부 해야 한다.
방송하고 뒷마무리 하고 밀린 집안일 하고
이제 장도 봐야 하고 아이도 데리러 가야 하니 바쁘다.
신랑 밥도 차려주고 나면 육아를 해야 한다.
엄마와 쇼호스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외줄 타기 같다.
며칠 전 김미경 강사님 강의에서 들은 내용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가족모두 발을 묶고 뛰는
2인3각과 같은 단체전을 한다고 한다.
육아를 해야 하니 발이 묶이고 그러니
단체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단체전을 치르다 문득
돌아보면 아이들은 다 커있고 이제 개인전이
시작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럴 때 찾아오는 것이 '빈 둥지증후군'이다.
아이들이 모두 둥지를 떠나가고 나서 겪는
심리적인 허탈함과 불안이다.
어쩌면 개인전을 잘 치르기 위해서 지금
일을 해야 하는 걸 수도 있다.
둘 다 완벽하게 잘할 수 없어도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며 단체전과
개인전 사이를 오간다.
단체전을 하면서 개인전 준비도 하려면
발을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어쩌다 삑사리가 나면 부부싸움 하는 날이다.
오늘 새로운 방송프로그램을 시도해 보려다가
리허설이 제대로 안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였다.
눈치 없는 신랑이 집에 와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시비를 건다.
나는 나름 대꾸한다고 했는데
영혼 없는 대답으로 느껴졌는가 보다.
"뭐야, 신랑이 오늘 일하다가 죽을 뻔했다는데
반응이 왜 그래."
"....(참자) 반응이 뭐가.. 많이 힘들었겠다."
여기까지 했으면 좋은데 2절을 시작했다.
" 너는 신랑이 얘기하는데 반응이 왜 그러냐고."
오늘의 외줄 타기는 실패다.
짜증이 폭발하며 삑~사리를 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뭐 내 생각과 달리 똑같이 화를 냈을 수도 있겠지만
일이 안 풀리면 확실히 예민해진다.
아이에게도 불똥이 튄다
.
예전에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 집안일을 하라면 집안일만 하고
직장을 다니라고 하시면 직장만 다닐게요."
시집살이를 했던 친구엄마가 시어머니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둘 중 하나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단체전과 개인전 모두 중요하니까
온전히 개인전에 돌입하기 전에까지는
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