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는 몰라도 그 시절은 안다.

죄송해요. 연진이는 잘 몰라요.

by 최지안


80,90년대 감성을 가진 아줌마.

그게 바로 나다.

나도 학창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 꾸었던 가장 무서운 꿈이

불이 켜지지 않는 꿈이었다.


어두운 어딘가에 있는데

전등스위치를 아무리 눌러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깬다.





새벽출근 하는 남편은 잠들고

놀이동산을 다녀와서 인지

금세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거실로 나왔다.



건조기만 돌려놓고 자려고

혼자 불 꺼진 거실에 나와 베란다 스위치를

누르는데 불이 켜지지 않는다.

예전에 꿨던 꿈이 생각나면서 묘한 감정이 든다.



불이 켜지지 않는 꿈.

많은 군중 속에서 혼자 떠돌듯 외롭게 걸어 다니는 .

이 두가지 꿈은 깨고 나면 가장 힘든 꿈이다.

내 과거가 그랬고 학창 시절이 그랬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학폭 관련 드라마

라는 것을 안다. 연진이가 누군지는 모른다.

주위에서 재미있다고 시청을 권유한다.

학폭피해자도 아니고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지만 심하게 마음을 맞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더 글로리는 못 보겠다.





" 아 나 최지안이랑 짝꿍 됐어. XX, "

나랑 짝이 된 학급 남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포효한다. 아직도 그 얼굴과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충격이었다. 내가 인기가 없는 줄은 알았지만

나랑 짝이 되는 게 그렇게 싫다니.



" 어머 넌 살면서 전쟁을 두 번 겪었니? "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내 유치원 졸업사진을

보더니 정말 네가 맞냐고 놀란다.

정말 큰 충격을 받은 듯한 그 표정을 잊지 못한다.

당시 웃어 넘기 긴 했지만 그 말이 마음에 남는 걸 보면

나도 꽤나 마음을 얻어맞은 것 같다.



" 지안이는 코가 너무 낮아.. 아예 콧대가 없는 것 같아.

못생겨서 싫어."

앞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줄 알고 떠들어 대지만

난 잠이 들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얼굴 생김새가 심하게 과도기가 오면서

살면서 가장 오징어 같은 얼굴이 되었다.

코는 너무 낮고 눈은 축 쳐져있고

입은 돌출형이었다.

소위 말하는 '만만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 나이 때 외모를 가장 중시하는 남학생들의

혐오 대상이 될 만도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은 그 시절로부터

물 건너온 것들이다.



지금은 성형을 한건 아니지만 교정을 하면서

튀어나온 입은 들어갔고 젖살이 빠지면서

통통하던 얼굴도 갸름해졌다.

빈대떡 같은 코는 화장으로 가릴 수준은 된다.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눌러도 켜지지 않는 전등.



삼삼오오 짝을 지어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속에 혼자 외롭게 걸어 다니는 꿈같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오늘같이 불이 켜지지 않는 전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기억과 감정은

그때로 돌아가 있다.


과거에서도 꿈에서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있다.



학교를 안 나가면 죽는 줄 알았고

부모님에게 모든 걸 얘기하는 것이

끔찍이 싫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꿈은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듯

현실을 걸러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꾸었던 꿈.

아무리 전등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은

학창 시절의 현실이었다.



지금은 전구를 갈 고 불이 들어오는걸

확인할 수 있다.



그 시절 전구를 갈 수 있는

지혜와 재치 또는 능력이 있었다면

불을 밝힐 수 있었을까?

밝은 학창 시절이 될 수 있었을까?



못생겼어도 성격 좋은 캐릭터를

자처한다든지



공부라고 잘해서 남들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독기라도 품든지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고민상담이라도 해서

해결책을 찾아본다든지



그걸 알았다면

어둠 속에서 불이 켜지기만을,

누군가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를 밝히는 건

지금의 삶을 밝히는 것이다.


" 어둠이 있었기에 빛이 소중한 걸

아는 거지. "라고 어두웠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과



" 어릴 때부터 그렇게 멍청하고

외롭더니 역시 내 팔자는 기구하구나."

라고 저주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한다.

못생기고 멍청했지만 그 시절을 잘 버텨준

사랑스럽고 그래서 더 존중하는 나니까.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오늘의 글이 나를

치유해 준 것 같아서 고맙다.



영원히 켜지지 않는 전등은 없다. 그 스위치는 마음에 있는 거니까.


" 넌 반드시 잘 되야 하는 사람이야. 알지?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