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안 Jun 03. 2023

어설프게 착하면 벌어지는 일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언젠가부터 기분이 나쁘다.

만만해 보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집 앞 놀이터에 나오는 할머니 한분은 손녀를 걱정하며 

이런 말을 하셨다. 


" 우리 손녀는 너무 착해서 걱정이야. 유치원에서 애들한테 

당하고 집에 와서 혼자 울고 그런다니까."


1. 내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 것 



우리나라에서 착하다는 인상은 고분고분하고 

순하며 할 말이 있어도 꾹 참는 조선시대 선비 같으면서

답답한 상을 말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건 그렇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양보 아닌 양보를 하게 되고 

싫은 말도 눌러 삼키다 보니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신혼 초에 집 앞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정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같이 일하던 제빵기사님이 알려주셨다.


" 사장님이 저렇게 너한테 막 대할 때는 정색을 해야지." 

아.. 난 그런 건 배운 적도 없고 

멍청하게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 신랑도 직장에서 

매일 구박받고 지적받는 게

힘들었는지 푸념을 늘어놓곤 했었다. 

하루는 산책을 갔다 오면서 

생각을 정리했는지 한마디 하더라. 


" 그동안 내가 나를 지켜주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누구보다 내가 나를 지켜줬어야 했는데.." 


그렇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경찰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고 배우자도 아니며 나 자신이다. 

방어해야 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인 것이다. 



2. 나에게 친절하지 못한 것 



누구에게 먼저 착해야 할까? 나다 

나에게 먼저 착하게 굴고 

그 다음 남에게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깨닫기 쉬운 내용이 아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칭찬을 들어도 

"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게 

미덕인 줄 알았고.


힘들어도 "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자랐기 때문에 

자기 욕구를 돌아볼 줄 모르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젠장, 그럼 난 맨날 미안하고 괜찮은 존재로 

살아야만 하는 건가? 


흔히 자존감이 높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게 쉽고 거절하는 게 쉬우며

칭찬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예의로 포장된 사람들은 칭찬받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힘들고 용기 내어 불편함점을 

말하는 게 힘들다.


그렇게 착하게 사는? 게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삶의 젖어든 습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 내가 지금 정말 힘들구나.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게 굉장히 불편하구나. "

이런 욕구와 감정부터 들여다 봐 주어야 한다.


불편한 것에 무뎌져서 엉덩이에 욕창이 나는지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친절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정 불편한 상황이면 말하자.


" 저도 불편하네요. 이건 좀 힘드네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습이라도 하자.


3. 우아한 바보밖에 되지 못했던 것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거절을 잘 못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미룬다.

" 똥 싸 뭉갠다"는 말처럼 그걸 치울 생각을 안 하고 미련하게

깔아뭉개고 있다. 누군가와 갈등을 일으키면 회피하려 한다. 


당장의 눈앞에 일어난 갈등이라면 자리를 피하거나 

친구 사이라면 천천히 연락을 끊거나 

연인 사이라면 잠수를 타거나 

회사라면 죽을병에 걸리기라고 한 듯 조용히 퇴사한다....


스스로는 뭔가 우아한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어쩔 때 보면 무지 비겁하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바보다.


남들이 나를 욕하는 걸 알아도 고상한 척 모르는 척 

난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마음으로 모르는 척한다.

사실 왜 내 욕을 하고 다니냐?라고 따져 물을 

용기가 없기도 하다. 


흔히 착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비난에 취약하고 남의 눈치보기 바쁘며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 동화는 우리 때와 다른 교훈을 주기도 한다. 

콩쥐와 팥쥐중에 누가 나쁘냐? 라테는 팥쥐였다.

근데 요즘은 아니다. 


콩쥐와 팥쥐 둘 다 잘못이다.

콩쥐는 팥쥐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하지 않고 

계속 괴롭힐 수 있는 빌미를 주었으며

팥쥐는 그런 콩쥐의 심리를 이용해 부려먹을 생각만 했다.

그러니 너희 둘 다 잘못이다! 



4. 정확하고 깔끔한 게 착한 게 아닐까? 


최근 켈리최 회장님 유튜브를 보면서 하나 배웠다.

" 돈은 절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마라."는 

시대의 명언을 누구나 알고 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흔하다. 


왜 그럴까? 한국의 끈끈한 정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외국처럼 가족간이라도 정확히 계약서를 쓰거나

냉정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 우리만의 청국장 냄새나는 

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켈리최는 말한다.

" 내가 10억 빚을 지고 딱 죽고 싶었다."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 좋은 일을 한 것 같지만

돈을 꾼 사람이 잘못되면 빌려준 돈은 그 사람의

목을 죄어온다. 빌려준 사람은 말할것도 없이 힘들다.

결과적으로 둘 다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우리 부모님은

주위에서 누가 어렵다고 하면 적금이라도 깨고 

집을 팔아서라도 도와주려는 성향이다.  


결과는? 오히려 적반하장이 되어버린다.

돈을 갚으라고 하면 서운하다고 하고 

억지로 갚더라도 줄 수 있는 거 아니었냐며 연락을 끊어버린다.

정이 넘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실수하기 쉬운 것이 돈이다.


정말 착해지려면 냉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돈관계, 인간관계에서 맺고 끊는 걸 정확히 해야 한다.

서로가 뒤탈 없고 손해보지 않도록. 


AI처럼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어떤 패턴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착해서 나도 남도 망치지 말고 

착하려면 먼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게 첫 번째고

정에 휘둘리거나 감정이 앞서지 않아야 함을 각인해 본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냉정할 줄 알고 결단할 줄 알며 

모든 관계에서 정확하고 깔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같은 시간 속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