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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안 Aug 28. 2023

신앙의 길과 노예의 길은 선택의 문제다.

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신앙의 길이 노예의 길이 아니길 바란다. 

신앙의 길을 갈지 

노예의 길을 갈지는 

선택의 문제다.


부의 인문학을 쓴 우석은 

사람들이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종교를 선택하지만 

실상은 노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왜 노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노력하기 싫고

책임지기 싫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지만


또 다른 구속을 만들기 때문이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하다.

계명을 지키면 복 

지키지 않으면 저주 

덤으로 현재의 괴로움도 내세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해야 할 것이 명확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다.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이 명확한 지침들이

해답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자유로부터 도피한다.






사실 난 이 문제에 대해서 내 의견을 적어보고 싶었다.. 

8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신앙을 해오면서 느끼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믿는 종교가 참이길 바라고 

그래야 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종교에 심취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보인다.


첫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종교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교와 종교인들이 있다. 

각자가 믿는 신이 참이라고 한다. 

나도 내가 믿는 신이 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참과 거짓을 떠나 

가장 중요한 건 종교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적인 존재를 믿기 때문에 내 인생이 

다 잘 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결국 나를 노예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다른 탈출구가 있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나를 구속한 것이다.


경쟁이 기본이고 

노력이 기본이고 

책임이 기본인 사회 속에서 

굳이 그걸 해내지 않아도 마음이 편했다.


왜냐고? 정신승리 하면 편안했기 때문이다.

난 지금은 비록 이 모양이라도 

나중에는 잘될 거니까 

그게 안되면 죽어서라도 천국 갈 거니까. 

난 하나님의 자녀니까 


초반에는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지만 

나중 되면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현재의 내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한 

자위적인 믿음일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 역시 난 뭔가 있는 사람이었어. 

내 인생 은 특별할 줄 알았어."라는

환상적인 믿음에 젖어서 현실을 잊으면

현실은 강력한 몽둥이를 가지고 

두들겨 팰 것이다.



두 번째 주도적으로 믿을 것인가 

수동적으로 믿을 것인가.



현실 속에서 내가 헤쳐나갈 것과

신앙 속에서 내가 믿어야 할 것은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의 성경말씀이 있다. 나는 이 말씀을 믿는다.


하지만 이 한 구절의 말씀만을 붙잡고 기도만 한다면 

과연 일이 이루어질까? 

당연히 아니다.


성경말씀 어디에도 " 네가 아무것도 안 해도"

라는 전제조건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 말씀이지

기도만 하면 다 된다는 말씀은 아니다. 


앞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내 입맛에 맞춰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부작용을 일으킨다.


아주 오래전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는 이런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복수가 찬 딸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기도만 하다가 죽인 엄마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그걸 보고 가까운 친척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 나는 저런 미친것들 때문에 교회 다니기 싫어." 


어떤 종교를 가지던 주도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똑똑한 신앙인이라고도 한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해야 할 것인데 

그럼 종교를 믿을 이유가 있나?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사람이 일을 행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처럼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에 신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 1%를 맡기는 것이 

어쩌면 100% 믿는 마음이지 않을까


종교를 가지는 것은 좋다. 

신을 믿는 마음도 좋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도피하는 마음으로 믿지는 말자.


노력하기 싫어서

책임지기 싫어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믿음으로 포장하지 말자.


나를 속이면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구속받지 말자.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그것이 노예의 길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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