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치유일기 마음소화
실행
신고
라이킷
13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최지안
Sep 18. 2023
그 많은 시간 속에 살았다.
우리는 그 많은 시간 속에 살았다.
영겁
의 시간을
찰나처럼 스쳐 보내면서
5살짜리 딸아이
를
샤워시키면서
미지근한 물을 맞춰준다.
조금이라도 온도를 못 맞추면
이내 핀잔이 돌아
오
기 때문에
세심함은 필수다.
" 엄마 차가워요.
"
" 엄마
뜨거워요."
조금이라도 온도가 안 맞으면
거침없는 피드백이 돌아오지만
나는 전문가처럼 금방금방 미세한
온도조절을 해낸다.
" 난 언제부터 적당한 온도를 맞출 수
있게 된 걸까? "
전부 생각은
안 나지만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
생각해 보니 난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었다.
매일 샤워
를 하면서
적당한 온도의 감을 익혔다.
혼자 젓가락질을 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걸로 기억한다.
당연한 것처럼 하고 있
던
것들이
실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시간 속에서 살았구나.
그 시간이 내 몸에 배어있구나.
혼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
지
?
" 맞아.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도 매번 버스를
잘못 타서
고생했어."
나를 스쳐간 많은 시간과
사람 속에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샤워를 마친 후
딸아이 머리를 말
려
주려는데
아이가
좀 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에게 최대한 다가가도
선은 이미 팽팽해져 있어
더 이
상 갈 수가 없다.
아이에게
더 이상 바람이 닿지 않아
아이를 불렀다.
"
이리 와. 머리 말리게."
한 발자국
만 옆으로 와주면 되는데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 드라이기 선이 짧아서 그래.
너한테 까지 닿지 않으니까.
네가
조금 더 이리로 와."
그제야
아이는 팽팽해진
드라이기 선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더 다가와서 머쓱한지
드라이기 선이
몇 개냐면서
얄궂은 숫자를 센다.
"
하나, 둘, 셋 세게밖에 없네! "
한 줄
인 선을 세어가며 짧다는 것을 말해본다.
나에게 닿지 않은 이 선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팽팽한 드라이기 선과
거기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람이
안 온다고 툴툴대는 아이를 보니
새삼 이게 나의 모습이었구나 싶다.
맞벌이를 하면서 나를 방치했던
부모님이 항상 원망스러웠다.
닿지 않는 이 선을 보니
언제나 팽팽하게 다가오셨겠구나 싶다.
생계라는 콘센트에서 떨어지지 않으면서
나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언제나 팽팽하게 사셨겠지.
끊어질 것 같은 노력을 하셨겠구나.
닿지
않는 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온기가 닿지 않아 춥다고만 생각했다.
"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삶 속에서
얼마나 고단했을까. 현실이라는
콘센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팽팽하게 살았을까."
맞벌이하면서
나를
돌
보기 위한
그 수많은 시간을
난 얼마나 헤아렸을까.
지금에야
한 발자국 옮겨
보이지 않았던 그 팽팽한 선
을
바
라본다.
우리는 압축된 시간을 산다.
그 수많은 나날들을 잊은 채..
keyword
감성에세이
인생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