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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안 Sep 18. 2023

그 많은 시간 속에 살았다.

우리는 그 많은 시간 속에 살았다.

영겁의 시간을 찰나처럼 스쳐 보내면서




5살짜리 딸아이샤워시키면서

미지근한 물을 맞춰준다.


조금이라도 온도를 못 맞추면

이내 핀잔이 돌아기 때문에

세심함은 필수다.


" 엄마 차가워요. "

" 엄마 뜨거워요."


조금이라도 온도가 안 맞으면

거침없는 피드백이 돌아오지만

나는 전문가처럼 금방금방 미세한

온도조절을 해낸다.


" 난 언제부터 적당한 온도를 맞출 수

있게 된 걸까? "


전부 생각은 안 나지만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


생각해 보니 난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었다.

매일 샤워를 하면서 적당한 온도의 감을 익혔다.




혼자 젓가락질을 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걸로 기억한다.


당연한 것처럼 하고 있것들이

실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시간 속에서 살았구나.

그 시간이 내 몸에 배어있구나.




혼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


" 맞아.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도 매번 버스를 잘못 타서

고생했어."


나를 스쳐간 많은 시간과 사람 속에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샤워를 마친 후

딸아이 머리를 말주려는데

아이가 좀 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에게 최대한 다가가도

선은 이미 팽팽해져 있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아이에게 더 이상 바람이 닿지 않아

아이를 불렀다.



" 이리 와. 머리 말리게."



한 발자국만 옆으로 와주면 되는데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 드라이기 선이 짧아서 그래.

너한테 까지 닿지 않으니까.

네가 조금 더 이리로 와."



그제야 아이는 팽팽해진

드라이기 선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더 다가와서 머쓱한지

드라이기 선이 몇 개냐면서

얄궂은 숫자를 센다.



" 하나, 둘, 셋 세게밖에 없네! "

한 줄인 선을 세어가며 짧다는 것을 말해본다.



나에게 닿지 않은 이 선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팽팽한 드라이기 선과

거기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람이 안 온다고 툴툴대는 아이를 보니

새삼 이게 나의 모습이었구나 싶다.



맞벌이를 하면서 나를 방치했던

부모님이 항상 원망스러웠다.



닿지 않는 이 선을 보니

언제나 팽팽하게 다가오셨겠구나 싶다.



생계라는 콘센트에서 떨어지지 않으면서

나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언제나 팽팽하게 사셨겠지.

끊어질 것 같은 노력을 하셨겠구나.



닿지 않는 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온기가 닿지 않아 춥다고만 생각했다.



"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삶 속에서

얼마나 고단했을까. 현실이라는

콘센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팽팽하게 살았을까."



맞벌이하면서 나를 보기 위한

그 수많은 시간을

난 얼마나 헤아렸을까.


지금에야 한 발자국 옮겨

보이지 않았던 그 팽팽한 선 바라본다.


우리는 압축된 시간을 산다.

그 수많은 나날들을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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