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신념은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 결국은 혼자 남겨질 거야 "라고 속삭이는
확신 어린 목소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들은 무수히 많다.
할머니댁에 맡겨져서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티브이를 보다 울다 잠든 아이의 모습
미용실 한편에 딸린 단칸방에 누워 시름시름 앓으면서
일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아이의 모습
등하굣길을 언제나 혼자 돌아와야 했던 쓸쓸함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모습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알림장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준비물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건 외로움이었고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살아왔다.
어쩌면 우울증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소아우울증이 있었다는 건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것이다.
어릴 때 너무나 당연했던 감정들이 심각한 우울증의 증상들이었다.
누구나 나처럼 생각하고 고민하고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너무 짙게 젖어버려서 어디서부터 도려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난 뭐든 시도했다.
내면아이치유, 감사일기 쓰기, 확언작성, 좋은 습관 만들기
식습관 바꾸기, 긍정적인 생각하기 등...
정신과 치료와 상담도 빠드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지만 1년이 넘게 정신과약을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나를 강하게 붙들고 있던 '잘못된 신념'을 바꾼 것이다.
사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지
막막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닥치는 대로 해볼 뿐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다.
약물치료도 상담도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었다.
난 뿌리부터 바뀌고 싶었다.
사실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책'이다. 책은 내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알게 해 주었고
그 신념을 올바르게 바꿀 수 있도록 인도해 줬다.
근본적으로 나를 괴롭 했던 생각 중 하나는
삶에 대한 허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돈이 많아도 명예를 얻어도 어떤 행복을 누려도
사람은 결국 죽으며,
잠깐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신념. 그것은 잘못된 신념이었다.
사람은 분명 신념을 가지고 산다.
원하는 것이든 원치 않는 것이든 그렇다고 믿는 사실들이 있다.
" 나이가 드니까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 자식이고 뭐고 다 소용없다. 말년에는 돈이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이런 말들도 하나의 신념이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한대로 된다. 뇌는 내가 믿고 있는 신념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념은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키와 같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숨어있는 빌런과 같은 것이다.
나에게도 하나의 신념이 있었다.
" 내가 고민하는 건 신도 해결하지 못할 거야."라는 신념
이 한 문장을 건져 올리기 위해 무수히 많이 고민했고
인생의 허무가 어디서 왔는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거슬로 8살 때로 올라간다.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 전도되어 갔는데
사람이 죽으면 천국과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곱씹어 볼수록 이상했다.
단순히 천국과 지옥이라는 극단적인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끝이 없다'는 개념이 그 어린아이에게 덜컥 걸린 것이다.
천국에 가도 끝이 없이 산다는 건데 그럼 기쁠까?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면서 등이 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는 그 말에 체해있었다.
그 당시 내가 두려웠던 건
천국을 가더라도 혼자 남겨질 거라는 외로움
끝이 없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의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무의식에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삶도 죽음도 내가 해결할 수 없구나. 나는 무력한 존재다."
" 나의 고민은 신도 해결할 수 없다."
이 신념을 찾은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말로 정의할 수 없었던 것들이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느낌으로만 있었던 것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된 신념을 바꿔주었다.
" 신은 내가 모르는 정답을 알고 있다."
그리니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은 온전히 맡기면 된다.
1) 대부분의 사람은 무엇을 믿을 것인지 의식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2) 우리의 믿음은 과거 경험의 잘못된 해석에 따라 형성된다.
3) 한번 믿음이 형성되면 마치 복음이라도 되는 것 처럼 믿어버린다.
- 네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중 일부 -
정신과에서는 약을 꾸준히 먹으면 좋아진다고 말한다.
상담사는 상담을 꾸준히 받으면 좋아진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치료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약과 상담은 거들뿐 효과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플라세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위약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말은 말 그대로 '가짜약 효과'이다.
약이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을 약이라고 속여
먹였을 때도 약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 토니로빈스는 말한다.
" 질병과 치료에 대한 믿음이 치료 자체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효과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믿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삶은 의도적으로 살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거기서 배우고 효과를 보려고
작정하고 덤벼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글쓰기를 통해
책을 출판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 오! 브런치작가 괜찮네. 한번 해볼까? "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생각해서
" 뭐야... 이거 구독자도 안 늘고 돈도 안 되잖아."
라고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을 본다.
" 나는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정체성을 정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쓴다.
이것이 나에게 이득이 되겠지?
이렇게 하다 보면 효과가 있겠지?
라는 생각은 사실 믿음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이득이 되게 효과가 있게
만들어야 한다.
결과에 대한 목표도 있겠지만
"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얻겠다."
"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라는 목적이 더 필요하다.
그렇게 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믿음은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 삶이 좋은 것을 주지 않아도 내가 좋은 것으로
만들면 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나의 선택이라고 믿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