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 자연 앞에 어찌 보면 인간은 무력하다.
죽음 앞에,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은 강하다.
인간은 무력하지만 강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에 대해 궁금해할 때 인간에게는
숨겨져 있던 강한 힘이 나온다고 한다.
강한 존재가 된다는 건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될 때가 아닐까?
살아야 할 이유는 뭘까?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걸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세상은 있었고
많은 존재들이 있었을 텐데
난 내가 살았던 순간밖에 모른다.
내가 모르는 광활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공포가 밀려올 정도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찰나를 사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 일 텐데
그런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뭘까.
아니 그렇게 잠깐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더 강한 애착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성공을 향해 자기 계발을 하고
열심히 돈을 벌다가도
허무가 몰려오는 순간들이 꽤 자주 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삶의 이유를 다시 묻곤 한다.
"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어쩌면 오랜 우울증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삶은 느끼는 자의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나로 단정 지어서 설명하기보다는
순간순간 느끼는 것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느꼈던 상쾌한 공기
오랜만에 친구랑 대화하면서 느껸던 기쁨
그런 느낌과 감정이 모여 나를 만든다.
물론 기분이 나쁜 날도 있고
불쾌한 일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 또한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이를 낳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한참 공황장애가 심했을 때가 있었다.
신랑과 잠깐 백화점에 나갔다가
의류매장에서 갑작스럽게 공포가 찾아온 것이다.
" 난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중간에 있구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붕 뜬것 같은 느낌
내가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평온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이렇게 나와서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건강하게 자기
삶의 한 부분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걸 온전히 느낄지 모르겠지만.
강한 공포를 지속적으로 체험하면서
역설적으로 강하게 삶의 의지를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더욱 일상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발달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더 온전히 누리고 싶었으니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살아남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살아남는다는 건 뭘까?
직장에서 잘 버티는 것?
힘들일이 있어도 살아가는 것?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듯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다르다.
누군가는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하지만
버티든 포기하든 그 속에서
나의 존재의 이유를 확인했다면 강해진다.
오늘을 살아냈다면
오늘의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억으로
기록으로
추억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강하게 뇌리에 남는
문구가 있었다.
" 살아가라, 그뿐이다. "
그 썸네일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압축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큰일 일 수 있다.
삶의 무게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모양과 무게가 이떻든
모두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만들어 간다.
아이가 5살이 되면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많이 한다.
" 엄마 내 몸속에는 뭐가 들어있어? "
" 내가 언니 되고 학생 되고 그다음에 어떻게 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성장의 과정
노화의 과정? 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기분이 이상하다.
" 내가 어른 되면 엄마는 어떻게 돼? "
" 엄마는 나이 들면 할머니 돼지."
" 할머니 다음에는 뭐가 돼?"
" 음... 할머니 다음은.."
죽는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했다.
" 엄마 몸속에는 왜 피가 들어있어? "
라는 질문을 하는데 대답해 주기가 좀 난감했다.
그러게 왜 피가 들어있을까....
당연한 건데..
" 피가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어. 산소랑
영양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거든. "
어려운 대답을 하고 말았다.
" 엄마 피가 없으면 어떻게 돼? "
" 깨꼬닥 하고 죽지"
난 그냥 정직하게 대답했지만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이는 죽는다는 걸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다.
나이 들면 병들어 버리고 죽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지만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는 존재니까.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존재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