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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음일지

식음일지

이틀째

by 정태산이높다하되

어머니가 싸준 인절미를 먹으며 일지를 쓰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기로 결심한 어제부터 어머니는 인절미를 싸주기 시작했다. 예상에 없던 목록이지만 받아들인다.


아침운동을 하고 나서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리고 우선 내가 끊어야 할 식품은 우유와 계란과 커피니까.


어제 먹은 것들을 나열하면,

오전(사무실)

사과, 단감, 무우 차, 인절미 4조각

점심(식당)

청국장+제육볶음

오후 간식

오렌지 반 개, 오미자 진액 한팩

저녁

흰쌀밥 한 공기, 김, 오이소박이, 게다리가 들어간 찌개, 더덕이 들어간 불고기 약간, 오렌지 반 개


우유와 계란, 커피를 먹지 않았다.


간밤 자기 전, 가려움증이 다소 진정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식이요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오래 살려고 저러나' 속으로 경멸했다. 그런데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려움증의 공격이 경멸을 종식시킬 줄이야.


가려움증이 자심해지면서 가려움에 대처해야 하는 일이 부지불식간 생활의 일부가 됐다. 오랜 기간 간절기마다 대증요법에 의존하면서.


먹는 것들 조절을 시작하면서 오전에 마시던 아메리카노, 점심을 먹고 나면 하루 걸러 먹던 캐러멜 마키아또나 바닐라 라테, 저녁이면 일주일에 한두 번 먹던 치맥, 과자들이 낯설게 여겨진다.


이런 음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 생각 위에 허벅지와 옆구리를 벅벅 긁고 있는 내 이미지를 얹는다.


가려움증의 폐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려움증의 고통을 긁는 행위의 환희로 전환하는 이상한 경험은 계속해서 악의 순환을 야기한다.


벌겋게 일어난 피부에 핏빛 점이 생기고 이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딱지가 되어 고목의 나무껍질처럼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피부가 겨울나무껍질처럼 변하려고 하면 다시 피부과에 가고는 했던 것이다.


식습관을 고쳐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예쁘고 피부가 맑은 의사가 한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가려야 할 음식이 있나요? 밀가루나 유제품 같은....?"라는 질문에, 의사 왈 "누가 그래요? 아무 근거 없는 말입니다. 특별한 알러지 반응이 없으니까요. 다 괜찮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을 팔고 있는 거잖아요."

나는 의사말을 믿었다. 특별한 알러지 반응은 없으니까. 서서히 밀려드는 가려움은 특별한 알러지 반응이 아니라고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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