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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May 15. 2023

연산군, 패륜아?

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 중에서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이다. 성종은 자신의 부인을 폐비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사약을 내려 죽였다. 성군은 아니라는 말이다.


“낮에는 요순堯舜이요, 밤에는 걸주桀紂"라는 평을 들은 인물이다. 성종은 3명의 왕비와 9명의 후궁을 통해 16남 21녀, 세상에 27남매를 낳았다.


폭군이자 음란한 군주로 악명 높은 이륭, 연산군은 4남 3녀, 7남매를 두었을 뿐이다. 이 대목은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은가?


성종은 1457년 생이다. 1469년에 즉위해 1495년 만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즉위 기간 26년 간 37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런 사람이 대신들과 짜고 아내를 폐비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기어이 죽였고 그러고도 그 아들을 후계자로 굳혔다. 일단, 정상적이지 않다.


연산이 폭군이 된 배경, 자료의 편파성

<연산군일기>는 연산군이 폐위된 뒤에 사관들이 쓴 기록물이다. 당연히 반정세력의 주장을 근거로 작성됐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이덕일 소장은 그 근거로 연산군 재위 시절에 연산에 충성을 맹세하며 재상과 대신으로 있던 23명 중 20명이 중종반정 이후 중종을 추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국공신에 책봉된 사실을 거론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랑방귀 끼며 연산과 함께 글을 지어 만세에 남기려 했던 책 <경서문>을 중종에게 건의해 태워 없애버린다.


이덕일 소장의 역사 평설은 읽어볼 만하다. 고증이 철저하고 사료를 바탕으로 한 판단의 개연성이 충분해 흥미진진하며 교훈적이다.


당시의 디테일을 알면 알수록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정치인들의 악행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통해 모친 폐비 윤 씨의 복수를 핑계로 왕권의 강화를 기도했다는 거다.


그러나 고도의 정치감각과 시대정신, 지혜가 모자랐던 연산군은 모친의 복수를 핑계로 토지와 권력을 독차지한 훈구파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사림파마저도 작살을 내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왕의 권력이 대신들의 뒷받침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사림은 등용해 뒷배를 마련했어야 했다.


중종반정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킬 수 있었던 훈구파들은 패륜과 음란, 악한이라는 프레임으로 연산군을 가두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산군은 흥청망청하지 않았다

"흥청이란 바르지 못하고 더러운 것을 씻으라는 뜻이고, 운평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모든 악공과 악생은 모두 광희라고 칭하라"라고 연산은 명했다. -조선 왕을 말하다 1권 93쪽-


연산군에게 흥청은 색욕의 대상이 아니라 최고의 예술가들이었다는 것이다. 훈구파들에 의해 색마로 묘사된 연산군은 사대부들보다도 금욕적이었다고 한다. 사대부들이 흥청 중 마음에 드는 기녀들을 첩으로 삼았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사대부들의 잔치에 연주해 줄 여성 악공을 내려달라는 청을 연산군이 들어주자 정1품 성준은 "성상께서는 사용하지 않으시면서 신들에게만 사용하게 하시니 황공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연산군 11년-"라며 인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연산군은 음란하지도 사악하지도 않았다.


사대부들에 의해 쫓겨난 연산군, 이륭은 민간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대부들의 패악을 그치게 해달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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