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시화 詩話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저자, 최영미가 연전에 내놨던 詩話집 <시를 읽는 오후>라는 책을 재미나게 읽은 이후 오랜만에 읽게 된 시화집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한 사람은 시인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문학평론가.
이 양반들이 똑똑한 데다가 공부를 하도 많이 해서 내용의 넓이와 깊이가 대단해 읽는 동안 감탄하게 된다.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파악을 해야 하는 건가? 하면서.
생에 대한 각서
이성복
사람 한평생에 칠십 종이 넘는 벌레와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삼킨다 한다 나도 떨고 있는 별 하나를 뱃속에 삼켰다 남들이 보면 부리 긴 새가 겁에 질린 무당벌레를 삼켰다 하리라 목 없는 무당개구리를
초록 물뱀이 삼켰다 하리라 하지만 나는 생쥐같이 노란 어떤 것이 숙변의 뱃속에서 횟배를 앓게 한다 하리라 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
이 시에 대한 해설, 인생은 사실 역겨운 것들까지 먹게 되는 여정이다. 별을 삼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벌레이자 개구리이며 생쥐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인생이지 않은가.
“항구적인 고통과 초월에의 노력이 생을 이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라는 것이다. 시 속 '날개'는 고통과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끝에 오는 해방,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관적이다.
평론가 김현은 이를 '따뜻한 비관주의'라고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
<말하는 보르헤스>에서 보르헤스가 소개한 레오폴드 루고네스의 시, <복 받은 영혼>의 첫 구절과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시키는 시도 발견했다.
먼저, 루고네스의 첫 구절
그날 오후가 반쯤 지나갔을 때
내가 일상적인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당신을 버려둔다는 막연한 당혹감이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소.
<인생의 역사>에서 신형철이 소개한 시
사랑의 발명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 했네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서사를 시로 표현한다는 것은, 단지 짧게 위트 있게 재미나게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화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사람과 자연을, 아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한없이 사랑해야 시 쓰는 일이 가능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