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불륜>이라는 소설로 내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줬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다. <연금술사>를 읽어야 하는데....
누가 내게 선물을 한 것 같긴 한데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선반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읽었다. Veronica Decides to Die.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25세에 죽었으면서 장례는 75세에 치른다."
베로니카도 스무살밖에 안 됐지만 반복되는 일상이나 결정된 미래, 또는 거추장스러운 주변 환경이 지겨워서 죽기로 결심한다.
연애도 사랑도 일상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그런 이유로 수면제를 한꺼번에 왕창 삼키고 나서 영원히 자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물을 마시고 20분쯤 운전을 해서 사무실로 간다. 몸에 좋다는 사과와 당근을 갈아 마시고 떡도 한 조각 먹고 차를 마시고 커피도 마시면서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제공해 주는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회의를 한다.
반복되지만 한 번도 이 일이 지겹거나 지루하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다행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연못의 오리는 추운 겨울에 물이 얼지 않도록 끊임없이 헤엄을 친다. 하지만 결국엔 연못은 꽁꽁 얼어있고, 오리는 사라진다.
우리도 그렇게 되겠지. 끊임없이 회의를 하지만 우린 늙을 테고 결국 어디론가 사라지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미친 짓은 사랑이다. 관계가 어떻든 사랑은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다. 삶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표현의 변주가 아닐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 점점 더 타인에 대한 사랑이 식는다. 가까운 몇몇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관계는 협소해지고 협소한 만큼 강도는 세진다. 그렇게 되면 기대도 실망도 점점 커지고 관계는 점점 더 쪼그라들겠지.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은 새로운 사피엔스를 겪어야 한다.
관대와 관용, 용서 같은 개념을 관계(삶)에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결이 다른 사람과도 만나야 정신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단다.
베로니카의 결심은 성공했을까.
앞서 소개한 격언의 의미는, 삶에 새로운 경험을 추가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결국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새로운 또는 진정한 사랑을 삶에 추가해야 할 것이다. 경험은 축적되고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삶의 자양분이 되겠지.
아. 이 소설에서 슬로베니아나 보스니아, 세르비아, 류블라냐, 브라질리아 같은 국가와 지역명에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부조리와 갈등을 볼 수 있다.
마리아의 공황장애와 에뒤아르의 정신분열증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영위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각자가 행하는 해석만이 있을 뿐. 나는 타인 또는 사건, 상황,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리고 타인이 내놓은 해석을 어떻게 평가하는가.